차가운 고시원에서 시작한 인생
대학교 2학년 저는 사진과 거의 똑같은 공간에서 지냈습니다. 딱 10년이 된 시기입니다.
제가 다닌 학교 주변은 너무 방값이 비쌌기에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고 싶어서 걸어서 30분 거리인 군자역 주변 중량천 인근의 고시원에 머물게 됐습니다. 30분씩 걷는 일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기 때문에 저는 중고로 자전거를 사서 타고 다닐 계획도 세웠는데, 첫 번째 등굣길에 요철에 부딪쳐 넘어지고, 자전거 휠이 휘는 일을 겪었습니다. 휠이 휘게 되면 원치 않게 바퀴가 브레이크 패드에 걸려 속도를 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돈을 들여 휠을 고치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자전거를 도둑맞게 됐습니다. 정말 기구한 삶이었습니다.
좁은 고시원 방에서 밝은 미래를 꿈꾸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한 주에 대부분을 라면과 밥, 차게 돌처럼 식은 반찬을 먹으면서 견디는 건 마치 포로수용소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밥이라고 해봤자 고시원에서 주는 찰기 없는 밥이었고, 그 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제가 밥을 푸러 갈 때쯤이면 바닥에 늘러 붙은 밥 정도가 전부였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하루가 있는데 고시원에서 제공하는 힘없는 밥에 마지막 남은 한 젓가락도 안 되는 오징어 볶음 몇 가닥을 반찬으로 먹었습니다. 20대 청년이 먹고 힘낼 수 있는 밥은 아니었지만 그 마저도 목이 막혀서 밥에 물을 부어 억지로 먹었습니다.
삶이 말라 가는 건 고통스럽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서 삶이 피폐해져 가는 상황이 오면 너무도 고통스럽습니다. 휴식을 취하고, 행복을 채우는 공간인 집이 도리어 고통스럽고, 휴식이 아닌 절망을 주는 공간인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제 이런 상황을 남들에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젊은 시절에 힘든 시기를 겪어야 한다.”는 마인드도 있었기에 낙천적으로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먹는 게 거의 없으니 몸이 건강하지도 않았고, 타인에 눈에도 건강해 보일 리가 없었습니다. 지금 그때 사진을 다시 보면 ‘내가 이렇게 삐쩍 말라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사실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빈곤했습니다. 700원짜리 삼각김밥을 놓고 고민하고, 지하철 비용이 무서운 삶. 내가 아낀 고작 2천 원의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거라곤 고시원에서 주는 말라비틀어진 밥과 냉장고에 있는 거의 없는 반찬이라는 사실이 매일 저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무서웠던 건 현실의 비참함보다는 미래의 비참함이었습니다. 왜냐면 제가 살던 고시원에는 수많은 40~50대 남성 분들이 홀로 살고 계셨는데, 대부분 소주 한 병과 라면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지 못하면 나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힘든 시간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 없이 죽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삶은 20대 청년이 견디기엔 너무 차가웠고, 제가 믿던 신도 차가웠고, 제가 놓인 상황은 참 암담했습니다. 그나마 주말마다 전철을 타고 고향집에 내려가 먹고 싶은걸 먹고,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쉼을 누렸는데 이 마저도 없었다면 지금에 제가 있었을까 싶습니다.
저는 정상에 올라가고 싶습니다. 왜냐면 고시원 바닥에서 시작한 사람들도, 삼각김밥을 먹을지 조금 더 아껴 다음날 1500원 학생 식당을 먹을지 고민하던 사람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러면 조금이나마 저와 같은 시절을 보내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힘든 순간에 놓인 사람일수록 더 힘들게 살아야 합니다. 아마도 더 낮은 보수를 받거나 아예 보수를 받지 못하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바닥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 바닥에서 견뎠던 힘으로, 이후의 삶에서 더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이 정상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