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싸움과 과거의 기억들
아직도 나는 삶을 마주하는 다큐멘터리를 볼 때면 아버지가 일하시던 공사장이 떠오른다. 먼지와 열기로 뒤덮인 곳에서 느껴지던 입안의 모래 맛이 선명하다.
양재동의 축축한 지하 1층 스튜디오에서 희망을 꿈꾸던 시절이 떠오른다. 양재천을 건너며 느껴지던 물비린내와 아침이면 체조를 하던 할아버지들. 2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반년을 모아 컴퓨터를 사고, 빚을 갚던 날들이 떠오른다.
이방인이 된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어린 시절 평택 내촌에서 자전거 타고 다니던 어린아이 같고, 이루고 싶은 것만 많았던 청춘인 줄 알았는데 시간을 흘러 기업을 만드는 건축가가 되었다. 1년 1년이 쌓이고, 과거의 모습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과거의 인연은 추억처럼 뒤로 밀려간다.
앞으로 계속 나아간다. 쉼 없이 뛰다 보니 아무도 없는 산등성이에 혼자 헐떡이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호의를 가장한 거래를 요청하고, 과거의 인연들은 다 멀어져 가니 내가 택할 것은 많지 않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로 가기로 했으니 아무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멀리 나아가야지. 과거의 슬픔들이 따라오지 못할 만큼 앞서 가야지. 마지막 숨이 사라지기 전에 모든 것을 이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