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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Jan 07. 2021

해커를 꿈꾸던 초등학생

용돈을 모아 리눅스 책을 사기

초등학생 때 내 꿈은 해커였다. 그 당시에 해킹을 공부할만한 곳은 해커스쿨이라는 사이트였다. 해커스쿨은 지금도 옛날 디자인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해커스쿨은 만화로 해킹을 쉽게 설명해줬는데 거기에서 처음 가르치는 내용이 “리눅스 설치”였다. 리눅스를 설치하고 파티션 분할하고, 해킹의 기본은 OS를 깔고 지우고 하는 것이다.

해커스쿨의 지금 모습.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엔 리눅스를 설치할 방법이 CD뿐이었다. CD는 비교적 구할 발법이 열려있었는데 바로 서점에서 리눅스 책을 사면 됐었다. 레드햇, 페도라, 센트 등 여러 리눅스 os가 있었는데 어떤 책이던 무척 비쌌다. 당시 돈으로 3-4만원이었기에 지금으로 치면 거의 7만원 이상의 책값이었다고 본다.  

그 시절 사려던 책

비싼 책을 사는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좌절이었다. 리눅스 설치 CD가 작동하지 않는 거였다. 처음에 산 레드햇 리눅스가 문제인가 해서 페도라를 샀다. 하지만 페도라 리눅스도 설치가 안됐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컴퓨터의 cpu가 너무 오래되서 설치할 수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해킹을 배우고 싶었다. 컴퓨터는 없을지라도 책이라도 공부하자해서 책을 펴고 공부를 했다. 당시 우리 집엔 노트가 없어서 집에 있는 농협 달력을 찢어 뒷면에 필기를 했다.


ls : 목록 보기


이렇게 적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 지금은 ls가 list의 약자라는걸 알아서 명령어를 쓰는것도 쉽지만 의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시 책에는 ls가 무슨 의미인지만 알려줄뿐 약자는 알려주지 않았다. 나에겐 명령어가 상형문자 외우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해킹을 리눅스 말고도 배울 방법을 찾아다녔다. 그 중 하나는 해커스쿨에서 제공하는 텔넷이다. 텔넷에 들어가면 해킹 문제를 풀 수 있는데 여러 재미가 있었다.

가령 “우간다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같은 말이 적혀있는데 해당 페이지의 비밀번호를 찾아내는거다. 참 기가 막히지만 결국 찾을 수 있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숨은참조 보기 통해 찾았던 것 같다.


난 어린 시절부터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운 친구들이 부럽다. 그들은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선배들과 선생님, 그리고 코드를 공유할 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난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코드를 사랑하고 프로그래밍을 사랑한다. 설령 내 어린기절에 기회가 없었고, 특별한 지원을 못 받았더라도 크게 슬프진 않다. 그저 어린 친구들이 부러울 뿐이다.


나는 늦게라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을 산다. 어린시절엔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던 많은 지식이 이제는 클릭 한 번으로 찾을 만큼 쉬워진 시대가 왔다. 이제는 어린시절 핑계를 댈 수도 없다. 찾지 않은건 내 책임인 시대니까.


문득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보고 싶다. 11살 남짓한 꼬마가 쉘스크립트 언어를 쓰고 있다니. 알지도 못하는 리눅스를 위해 20-30만원을 모아 썼다니. 그 모습을 과거로 돌아간다면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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