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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03. 2021

내가 시도했던 사업들 - 1

10대부터 도전했던 기록들

아직까지 제가 시도한 사업 아이템들이 궁금하신 분들이 많으신 거 같아요. 저도 몇 개나 시도했는지 궁금해서 한 번 찾아보면서 정리해봤습니다.


1. PMACH(PGR21 + Hamach)

제가 중학교 2~3학년 때 만든 커뮤니티 웹사이트입니다. 당시 친척형의 소개로 PGR21이라는 스타크래프트 중심의 게임 커뮤니티를 알게 됐는데 저는 이곳에서 대화하는 게 무척 즐거웠습니다. 그 당시 스타크래프트는 온라인으로 게임하는 배틀넷에 랙이 있어서 정교한 컨트롤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프로게이머들은 배틀넷이 아닌 하마치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연습을 했는데, 하마치는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프로그램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하마치라는 좋은 프로그램이고, 무료였기에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마치는 특성상 서로가 서로의 채널 주소를 알고, 들어가는 방식이라 서로 소통할만한 창구가 없다면 하마치 채널을 공유하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하마치 채널을 서로 공유하고,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게임 관련한 소통을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인생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사용자 수가 꽤 되던 커뮤니티인 PGR21의 서브 커뮤니티 느낌으로 PMACH라는 이름을 지었고, PGR21에서 홍보를 해서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사이트는 출시하자마자 서버가 터질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제가 만든 최초의 채널도 허용 인원을 다 채울 정도로 꽉 차서 수 십 개의 서브 채널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이트는 곧 폐쇄해야 했는데 바로 너무 많은 사용자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용자가 들어왔고, 당시 중학생의 용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서버 비용이 발생했기에 사이트를 폐쇄했어야 했습니다. 만약 저희 부모님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광고를 유치해서 서비스를 운영했다면 꽤 운영을 했겠지만 그러지 못했죠. 인생 첫 사업 실패를 경험했고, 그때 준비되지 않은 성공이 부질없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2. 테크리뷰

시간이 한참 지나 저는 대학생 시절에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무렵 대한민국에는 페이스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당시에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가상의 인물이 포스팅을 하는 장난도 많이 했었습니다. 저는 페이스북 같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업을 들을 때도 듣지 않을 때도 페이스북과는 다르게 내가 만들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봤습니다.


지금은 플랫폼 산업이 크게 돈이 된다라는 말은 안 하지만 당시에는 페이스북을 필두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돈이 된다고 하면서 온갖 종류의 마이너 한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시절이었으니 플랫폼을 개발해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공대생이고, 배운 게 공학 관련 지식들 뿐이니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처음엔 3D 형태의 화려하고, 인터렉티브 한 웹앱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WebGL 기술을 사용해야 하고, 배워야 할 것도 너무 많았습니다. 공부를 해봤지만 너무 어려워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돌고 돌아 웹사이트를 개발 해기도 하고, 워드프레스를 써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반 없이 만든 거다 보니 CSS도 주먹구구식으로 넣어보면서 개발했고, 소위 말해 될 때까지 만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작은 플랫폼을 만들긴 했지만 정작 모든 플랫폼이 그렇듯 초기 사용자를 불러들일 콘텐츠가 필요했고, 콘텐츠를 기반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키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반대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간단하게 콘텐츠를 올리는 형태로 초기에는 운영하고, 서비스가 커지면 홈페이지를 연동해 그동안 쌓인 콘텐츠와 사용자를 옮기고, 부가적인 기능을 넣어보자고 말이죠. 그렇게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고 광고에 수 십 만원씩 쓰면서 페이지를 키워 몇 천 명의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만 이 프로젝트는 중지하게 됐습니다.


중지한 이유는 크게 차후 사업 아이템에 대한 부분과 성장이 힘들다는 점이었습니다. 광고를 돌려서 사용자를 늘리는 것은 쉽지만 콘텐츠만을 통해 팔로워가 늘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한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도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인기 있는 페이지가 적어도 하루에 6개의 콘텐츠, 많으면 12개 정도의 콘텐츠가 올라오는 게 좋은 페이지로 인정받았습니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6~12개의 콘텐츠를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고, 수익성에 대한 고민까지 들면서 프로젝트는 중단하게 됩니다.


3. 에클러어(매드크래프터)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고 있었습니다. 창 밖을 보면서 내가 정말 바라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티셔츠를 10,000개 팔아 1억을 모아 인공위성을 띄운 송호준 씨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도 티셔츠를 만들어 팔아보자,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내가 이전에 만들어본 웹 사이트 경험을 통해 쇼핑몰도 만들고, 운영하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 유일한 디자이너 친구에게 이야기해서 패션 브랜드 하나 만들어볼래 했었죠. 친구는 패션 디자이너는 아니었기에 패션 디자인을 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조언해줬고, 그 조언을 받아서 패션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동아리 형님들 중에서 패션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패션 시스템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가 적성을 찾았다고 느꼈습니다. 패션 분야는 특성상 여러 업체가 참여하고, 필요한 사람도 많은데 이 분들과 연락하고, 미팅하고, 가격을 조율하는 일들이 4년 동안 공학을 공부할 때는 전혀 느끼지 못한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고, 지하철을 하루에 몇 시간씩 타면서 돌아다녀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이 온몸을 꽉 채웠었죠.


에클로어의 사업 기획 및 시장 조사, 필요한 비용 조사를 모두 마칠 시점에 저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원래 제 삶의 계획인 대학원에 진학해서 석 박통합 과정을 마치고, 군 복무도 해결하는 방법. 또 하나는 사업을 어쨌든 일으키고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는 방법. 그러나 저는 사업을 택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크게 3가지였는데 시작하는 창업 비용에 대한 부담이 컸었고, 두 번째는 군 복무에 대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사업을 만들어두고, 군대로 떠나면 그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마음이 들었죠.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4학년 2학기 때 한 졸업 연구 주제가 재밌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로 컴퓨터를 이용해 재료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과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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