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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Nov 18. 2021

3억보다 큰 500원

지난 반년

사진은 올해 3월 7일이다. 18년 정도 미뤄온 양악 수술을 했다. 수술 후 12시간이면 얼굴이 부어올라 코 속의 비강을 막아 숨도 거의 쉬지 못한다. 입으로 숨을 쉴 수도 없다. 근육이 찢어진 상태라 입을 벌리는 게 불가능하고 입에 피가 고여 힘겹게 피를 삼키는 것만 가능하다.



붓기가 상당히 빠졌을 때 모습


패스트캠퍼스 촬영 장소


입이 제대로 열리기도 전인 4월 초부터 패스트캠퍼스 강의를 찍었다. 동시에 6천만원어치 프로젝트를 수주해 개발했다. 4-6월 세 달간 번 돈은 거의 1억에 가까웠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사람 치고는 열심히 해냈던 것 같다.


5월 사무실을 내고 이번 달까지 3번의 사무실 확장을 했다. 매월 700만 원 가까운 돈이 월세로 나간다. 직원 면접만 100번 정도 봤다. 도합 디자이너 200명, 개발자 200명 정도의 이력서를 봤다.


사람을 계속 뽑았다. 아직까지 11명, 외부 협업하는 분들까지 하면 14명이다. 매달 2-3명을 뽑겠다고 이야기했는데 목표를 달성했다. 매달마다 성장률이 100% 정도인 것 같다.


전 세계 최대 교육 플랫폼 유데미에 여러 개발 글을 기고했다. 즐거웠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아쉬웠다.


지금도 계속해서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쓰고 싶은 주제는 많았고, 제안 받은 조건은 업계 최고 수준이었다. 다만 책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다. 책은 언제든 쓸 수 있었지만 고객과의 약속은 미룰 수 없었다.


최근 프로젝트 3개가 문제가 생겨서 도합 3천만 원의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따로 피해를 청구하지 않았다. 그들과 싸울 시간에 쏟을 에너지면 더 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리어 우리와 현재 일하고 있는 고객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학원비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꿈을 이루기 위한 무대가 준비됐으니 춤을 춘다. 이 기회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죽기 살기로 추는 것이다. 남들 눈에는 내가 즐겁게 보일지 아니면 피곤해 보일지. 어쩌면 슬퍼 보일지 알지 못하나 나는 세상에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다 망해가던 에어데스크를 끝까지 만들면서 이직 제안을 거절할 때 하던 말이 있다. “내가 스스로 만든 것으로 500원이라도 벌고 그만하겠다.”


다 망해가던 스타트업을 떠나지 않고 버텼던 것도 같은 의미였다. 쉽게 포기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시작할 때의 패기와 열망,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해내 온 것을 기억했었다.


돈의 크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은 얼마를 버는지 말하지 말라고 하고 두려워하는데 단언컨대 내가 지금 버는 몇 억 원의 돈보다 에어데스크를 밑바닥서부터 쌓아 올려 만든 500원이 값지다. 그 500원을 벌겠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나를 믿어주는 분들도 없었고, 나라는 사람은 그저 철새처럼 이것 저곳을 떠돌며 다닐 것이다.


인생의 정답은 모르지만 나는 후회가 없는 삶이 정답이라 믿는다. 거의 모아둔 돈 전부인 2천만 원에 이르는 양악수술을 하고, 밑바닥까지 긁어 사업을 밀어붙였던 것들. 하나도 후회스럽지 않다. 누군가에겐 나는 광인이고, 누군가에게 나는 웃긴 사람일 테지만 타인의 평가가 무엇이 중요할까.


살아온 궤적으로 삶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택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가는 인간이고 싶다. 나의 부모님, 가족, 그리고 미래의 자녀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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