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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Dec 25. 2021

오늘 같은 날

오늘 같은 날이 무척 싫었다. 모두들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보내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웃고 떠드는 그 모습에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심지어 연애를 할 때도 그랬다. 데이트를 하고, 맛있는 걸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도 그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무언가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지곤 했다. 아마도 그 공허함의 원인은 내가 진정 바라는 행복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크리스마스의 여유와 행복을 느끼고 싶지 않았고, 단 하루라도 빨리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모든 시간들이 고통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장 집 밖을 나가서 식당, 카페를 보면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다. 이렇게 추운 날에도 밖에서 청소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모두가 즐거운 모습으로 길거리를 누빌 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부랑자들과 노숙자분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시선을 조금만 멈추면 보이는 많은 삶의 모습들이 있다.


내 인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날이 있다. 연초에 교회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는 날이었다. 학생들과 청년들을 이끌고 교회 뒤편 작은 집에 사시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할머니는 사람의 방문이 없이 사셨던 것 같았다. 어두운 방에는 두 뼘의 작은 텔레비전만이 켜져 있었고, 가족도 없이, 자식도 없이 텔레비전을 벗 삼아 긴 겨울을 보내고 계셨다. 우리는 할머니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드리니 할머니는 부엌에 가서 한 움큼 귤을 집어오셨다. 우리가 가져가기에 넘치는 귤을 손에 쥐어주시며 “고맙다. 고맙다.”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셨다. 인사를 마치고 집을 나오면서 나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채널 몇 개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할머니에게 우리 방문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무도 찾지 않는 할머니의 집에 손님이 온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이후로 내가 교회에서 학생 청년회 회장을 했었던 기간 동안 매년 신년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께서 떠나시기 전까지.


오늘은 유난히 날이 춥다. 행복해 보이는 일상이 누군가에게 추위로 다가서진 않을까 조심스럽다. 이 글을 마치고 소중한 분들에게 연락을 하려 한다. 소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그러면 오늘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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