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 전 마지막 2달의 일기장
간만에 고향에 내려와서 예전에 보던 책을 찾던 도중 반가운 노트를 만났다.
이 노트는 16~18년도 군생활 할 때 쓴 노트이다. 정확히는 18년도 3월부터 5월까지 2달동안 쓴 노트이다.
첫번째 페이지에는 일기가 있었다.
공부에 대한 생각이랑, 에어데스크를 만들면서 했던 고민들이 보인다(기능이 섹시하지 않다). 일기에는 그당시 내가 깃(git)과 헤로쿠(heroku)라는 서비스를 배우는 시점으로 보인다. 군 복무 시절에는 깃허브 개인 레포지토리가 유료였었고, 더군다나 깃 명령어를 사용해도 터미널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깃랩도 안됐고, 당시엔 브라우저에서 바로 쓸 수 있는 IDE도 사용하기 불편했던 시절이다.
노트의 곳곳에는 일기와 더불어 명령어와 온갖 컴퓨터 공학에 대한 내용을 필기해둔 것으로 차있다. 소캣, 스트림, 패킷과 같은 걸 당시에 공부한 걸로 보인다. 지금은 딱히 어려운 개념도 아닌데, 노트 중간에 있는 qs = require("querystring")과 같은 걸 적어둔걸 보면, 노드 부분은 컴퓨터 없이 책을 통해서만 공부하던 시절이라 모듈을 하나하나 적어두고, 알아두어야 하는 모듈이라고 체크하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 밖에 리눅스 명령어나 OS 구조도 보인다. 커널과 쉘, 애플리케이션이 올라가는 그림도 있다. 노트 하단엔 prototype을 사용하라고 했는데, 이 당시에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당시 만들언 소프트웨어에 적용시켜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바보같이 클래스 생성자나 인스턴스, 상속의 개념 등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내 제품에 적용하면서 몸으로 체득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헤로쿠의 프로세스 커멘드와 npm의 기본적인 명령어가 보인다. 당시엔 node를 배우던 시절이라 npm과 node가 어떤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 의존성 모듈 등을 어떻게 추가하는지를 책으로만 알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공부를 했나 싶을 정도지만, 군대에서 노드 프로그래밍을 해볼 수 없었기에, 당장 제대 후에 서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책을 보면서 공부하는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노트의 다른 페이지에는 서비스가 정교화 되면서 필요한 기능들도 있었지만, 신규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나 기술적인 배경에 대해 기록하기도 했다. 5PNTZ라는 웹 서비스를 에어데스크 후속작으로 만들었을 때 필요한 기능들이나, 고려해야할 점들을 기록해두었다.
하루에 컴퓨터를 한 시간 밖에 못 쓰는 상황이다보니 손코딩을 한 흔적들도 보인다. 알아보기 힘들겠지만 중간에 스크래피라는 내용도 보이고(웹 크롤링에 사용), jade라는 서버사이드 랜더 템플릿도 보이고, 하단에 node.js를 일렉트론으로 바꾸어 데스크탑 앱을 만드는 것도 끄적인게 보인다. 이 당시 자바스크립트로 코드를 써보면서 동시에 자바스크립트 언어로 만들 수 있는 플렛폼 확장성을 많이 배우던 시절이었다.
5PTZ의 레이아웃 구성과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 스케치이다.
좋은 코드와 리팩토링의 장점 등을 정리하기도 했다. 좋은 내용을 아는 것과 적는 것은 다르고, 적을 때 나의 생각을 담아 적는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이 중 많은 생각이 섞이고, 내 안에서 논쟁한 생각들이야 말로 진정한 실력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에어데스크에 대한 추가 기능들, 유료 기능을 넣었을 때 아이디어 등을 적었다.
그리고 5월 1일은 거의 마지막 출근일이었을 것이다.
내 군시절 노트 중 한 권의 일부분을 공유해봤다.
공군 24개월의 시간 중에서 훈련소, 특기 교육 기간을 제외한 모든 기간 동안 노트를 쓰다보니 2달에 1권씩 10권 정도의 분량을 일기와 공부, 사업에 대한 고민, 에어데스크의 UI 디자인 등을 적었다.
그 시절 나는 마음껏 코드를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하루에 1시간이 아니라 10시간을 쓸 수 있다면 나는 10배 이상 더 잘할 수 있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책상을 키보드 삼아 타이핑 연습을 하고, 코드를 쓰는 상상을 했다. 재밌게도 상상 속에서 써진 코드는 실제에서도 어느정도 쓸 수 있지만, 상상으로도 잘 그려지지 않는 코드는 실제로는 쓰는게 불가능했다.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가 생기게 된다면 젊은 시절에 고민했던 일기장과 사업을 구상하며 기록한 모든 노트들을 남겨 주고 싶다. 아버지가 어떠한 마음으로 청춘을 보냈는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내 과거의 모습들이 부끄럽지 않기에 소중히 간직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나에게 군시절은 가장 불안하고 두려웠던 시절이다. '제대 후에 나는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공부했던 것들이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너무 부족하진 않을까.' 세상의 기준을 알지 못하니 두렵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제품에 온갖 신경을 썼다. 당연하게도 세상에 꺼내놓은 사업은 세상을 모르는 초짜 사업가를 바보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신 내가 공부했던 온갖 종류의 책들과 지식들은 강력한 도움이 됐다.
즐겁다. 만약 이 많은 것들을 하고서도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면 창피했을텐데, 적어도 과거의 나에게 창피하지 않다. 4년 전의 나를 마주해도 좋은 날이다. 제대를 앞두고 세상을 마주하기 전 느꼈던 두려움 덕분에 이제는 두렵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