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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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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Aug 22. 2022

8월 22일

2022. 8. 22

오랜만에 친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밤이 늦도록 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가 떠오르는 이태원 한남동 길거리는 언제 와도 평화롭다.


길거리는 평화롭지만 나와 친구의 지난 시간은 평탄하지 않았다. 불꽃같은 20대를 보내며 평균 이하의 시절도 겪었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기에 고생도 많이 했다.


친구는 바이크 샵을 운영하는데 나도 그렇지만 친구도 이태원에 샵을 차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한복판에 저렴한 가게를 구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고, 심지어 비싸기로 소문난 한남동이라니 천운이 따라준 걸지도 모른다.


10년 전쯤 우리가 대학생 시절일 때 어떤 미래를 살지 고민하던 날이 있었다. 올림픽 대교인지 어딘지 모를 곳을 터적 터벅 걸으며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삶에 대해서, 꿈에 대해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과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서.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누구의 큰 도움 없이 바닥부터 올라온 사람들이다. 부모님께서 사업하라고 큰돈을 밀어주시지도 않았고, 내 경우엔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살이로 서울에서 시작해서 아버지께 200만 원 빌려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몇 달씩 꼬박꼬박 돈을 갚고, 처음으로 쿠팡으로 산 46만 원 컴퓨터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 컴퓨터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나는 친구와 미래를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믿는 좋은 제품에 대해서 떠들었고, 친구는 친구가 하고 싶은 사업과 현재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와 친구 모두 글로 적기 힘든 어려운 순간들도 많았다. 친구는 본인의 문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해결해야 했던 날들이 많았었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던 셈이다.


얼마 안 되는 자본금으로 하루하루 벌어가며 살아가는 것도 벅차지만, 그러면서도 가족이나 친구의 짐까지 지고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삶이야 말로 강한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이라 생각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공구함처럼 삶을 살고 싶지만 정돈하기 힘든 문제들을 해결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몇 년이고 정돈하고 정돈하고. 해결하며 살다 보니 어쩌면 이제는 정리가 다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치지 않으며 살아오고 있다. 많은 걸 쥐고 태어난 게 아닐지라도 10년 전 우리가 고민했던 미래보다 어쩌면 더 멋진 모습으로 우린 살고 있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꿈이 많던 20대 초반의 우리는 여전히 선명한 꿈을 꾸고 있었고, 오랜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깊은 잠을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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