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끝에 만난 언덕 너머
고향에 내려와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대로에 날리는 먼지에 옆에는 풀숲에 산책으로는 좋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그 길을 걸어왔었다. 하루에 몇 대 오지 않을 버스를 타고 답답한 고향 집을 벗어나기 위해서. 아니면 정리되지 않은 내 삶의 고민들에 답을 찾기 위해서.
길을 걸으면서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괴로운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과거의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내가 만드는 제품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어떤 기능을 더 붙여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기를 수백 번. 그 고민을 하고 돌아온 집에는 여전히 나 홀로 이 무게를 견뎌야 했고, 나 홀로 코드를 써서 생각을 현실로 이끌어야 했다.
그래서 더욱 나는 도시와 떨어진 시골에서 외로운 싸움을 하는 이들의 마음과 심정을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수년을 살아왔고, 천금 같은 기회도 군대와 같은 의무로 인해 포기하기도 했고, 오해도 받고 나쁜 놈도 되며 살아왔다. 바닥에서부터 올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에 바닥의 삶에서부터 나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그러면 내가 언젠가 바닥이 아닌 곳에 도달했을 때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오랫동안 벽을 기어 올라가 보면 온 몸은 상처로 뒤덮일 것이다. 그것이 꼭 육체적인 상처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상처, 자신에 대한 실망, 사람에 대한 불신, 배신감 등 온갖 일을 겪을 것이다. 나 역시 수천만 원, 수억 원을 믿었던 고객들에게 받지 못했고, 믿었던 동료가 말도 없이 떠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계속 올라가다 보니 알게 된 것은 풍파를 겪는 길이 곧 지름길이었다. 큰 성공이 시련 없이 이뤄진다면 큰 성공 뒤에 큰 실패가 왔을 때 견디기 힘들겠지만, 수많은 실패 위에 쌓인 성공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힘든 길로 가는 것이 정도이고 동시에 왕도였다.
산책 길은 먼지와 벌레, 지저분한 풀들로 가득했었지만 언덕 위에 지는 노을이 참 예뻤다. 아무도 가지 않는 험한 길을 지나고 만난 예쁜 노을을 보니 험한 길에 묻은 먼지는 기억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