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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26. 2022

전쟁 같은 공포

아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님의 싸움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은 전쟁과 같은 공포처럼 기억된다고 한다. 나는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 적어도 부모님의 싸움과 내 주변 친구들의 부모님의 싸움을 많이 보았다. 우리 세대 부모님이 많이 싸운 이유는 명확하다. IMF. 그것 하나로 많은 게 설명된다.


출처: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97383D5C02A0D428


어렸을 땐 몰랐는데 그 당시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IMF는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특히 한국은 그 전 세대까지 고도성장을 하던 시기였고, 88 올림픽을 비롯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컸다고 한다.  예금 금리가 10%가 넘는 시절이니 말이다. 잘 나가던 와중에 받은 충격은 부를 축적하지 못한 이제 막 부모가 된 세대, 취직을 해야 하는 세대에게 직격탄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을 느낀다고 한다. 노년으로 가면 갈수록, 중년에 회사에서 밀려나는 고통도 이와 유사하다고 한다. IMF는 사회 전체에 "넌 필요 없어."라고 말한 것과 같다. 아주 유능한 인재들 몇몇을 남기고 모조리 자르고, 잘 나가선 사업가들을 파산시키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파괴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러니 자연스럽게 우리 세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갈등을 수없이 봤다. 안 봐도 비디오이다. 


하루는 중학생 시절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 어머니께서 밥을 차려주셨다. 차려주신 밥이 쉰 김치에 밥, 물이 끝이었다. 우리 집도 잘 먹는 편은 아니지만 이건 먹기 너무 힘들어서 깨작이고 있을 때, 친구는 밥에 물을 말아 김치랑 잘 먹었다. 그 친구에겐 이게 일상이었고, 나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친구네 놀러 갔을 때도 비슷했다. 집에 부모님은 안 계시고, 넓은 TV에 방치된 중학생들. 집어던져서 깨진 건지 알 수 없는 여러 집기들. 이 집도 사연 많은 집이구나 싶었다. 


출처: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0A18345CA5B05322

어느 세대건 아픔은 있겠지만 내가 속한 세대는 부부싸움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닐까 싶다. 부모님이 절망하는 모습을 봐왔고, 돈 때문에 아빠와 엄마가 언성을 높이며 답 없는 논쟁을 이어가는 모습을 봐왔을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나는 내 자식에게 고통을 선물하지 않기 위해 낳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는 걸 보곤 하는데, 나도 중학생 때까지 그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이렇게 삶이 힘들다면 나는 나이 먹어서 절대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하면서 컸다.


시간이 지나 내가 하던 생각을 우리 세대가 결혼할 시기가 되어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고, 아이를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수만 년 동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세대는 그것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고통을 낳지 않겠다 다짐하는 세대가 됐다니. 마음 먹먹한 일이다.


시간이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준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 생긴 상처는 치유가 불가능한 게 많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의 자아를 형성하고, 잠재의식을 형성하고, 성격과 사고, 가치관도 형성한다고 한다.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면 여러 감정적 어려움을 평생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아픈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모두가 아픈 시절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아픔을 감추며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어찌 보면 대단하고, 안타까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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