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과 벽 사이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던 신라스테이 호텔 삼성의 옥상 라운지에 가보게 됐다. 맡은 편에는 시원스레 뻗어있는 트레이드 타워를 좋은 경치에서 보게 됐다. 저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는 누가 있을까. 저 건물의 한 층 한 층에는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을까.
트레이드 타워를 지은 분과 소유한 분은 모르지만 저렇게 큰 건물을 세운 사람에게는 그전까지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부모님에게 부를 물려받던 자수성가를 하던 말이다. 수천억에 이르는 저런 빌딩들이 이 넓은 서울을 채우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삶과 땀이 담긴 돈이 하나하나 쌓여 올라갔음을 뜻한다.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있고, 희로애락이 있었을 것이다.
문득 미래가 모두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운명적인 만남을 하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많은 세상을 어린 나이에 경험하는 것 같다. 나는 사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보고 있다. 나 역시 어쩌면 중간에 끼어 점점 회색빛 특색 없는 인간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회색이라는 것도 나를 과대평가한 것이 아닐까 싶다. 본질은 검어진 사악한 사업가가 된 건 아닐까. 그 누구의 돈이라도 좋아라 달려드는 인간이 된 건 아닐까.
나는 아직까지 여러 번의 투자 제안을 받아왔다. 이직 제안도 수없이 받아왔다. 그러나 항상 거절 또 거절하며 내 사업과 내 일을 해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멍청한 짓이기도 하고, 동시에 어리석은 짓이었다. 에어데스크를 만들 때도 나는 밑바닥부터 쌓아 올라간 제품으로 단 돈 500원이라도 벌어보겠다고 하면서 수천만 원의 연봉을 거절했다. 27살, 28살, 29살... 거절을 하면서 살아왔고 선임 개발자, 리드 개발자, CTO 자리를 거절한 걸 줄 세우면 족히 30개 회사는 될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자존심이자 철학을 지키며 나아갔다. 세상하고 타협하지 않았다. 한 달에 500만 원을 받느니 500만 원을 써서라도 내 제품으로 번 500원을 따라갔다. 미친놈처럼 살아왔기에 사업을 시작했을 때 나를 원하는 업체가 많았다. 그곳에서 나와 회사 전체를 사겠다고 한 것만 이제 3번째이다. 그러나 한 번도 팔지 않았다. 그들이 적은 가격을 불러서도 아니고, 그들에게 비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내가 믿기에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기에 팔 수 없었다.
좋은 회사를 만든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쩌면 슈퍼맨이 되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했다. 좋은 회사엔 보통 좋은 복지가 있었고, 좋은 복지는 많은 비용을 뜻했다. 또한 좋은 회사는 좋은 사람들이 필요했고, 좋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선 우리 회사가 사람들에게 원하는 회사여야 했다. 그러나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직원 한 명 없는 이곳에 누가 오고 싶을까 했다.
지금은 20명쯤 되는 회사가 됐지만 하루하루가 좋은 회사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조금은 멈추고, 타협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했다. 강박적으로 야근을 시키지 않기 위해 직원을 계속 뽑았다. 이력서를 천 장이 넘게 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개발자들의 실력을 알았고, 지원자들의 수준을 배웠다. 경력자들의 커리어와 면접을 수십 시간씩 보면서 내가 기대했던 세상과 현실의 차이도 알았다.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좋은 인재는 무척 비싸고 귀했다는 것을 배웠다.
여전히 내 삶의 목표는 좋은 회사뿐이다. 좋은 회사 아래에 모든 게 있다.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인간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 삶은 연약한 아기 같은 이 회사를 살리고, 이 회사가 좋은 기업 문화를 가지고 대한민국에서 빛나는 기업 중 하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그것을 이룰 수 있다면 앞으로 10년, 20년 정도는 나에게 들어온 모든 좋은 제안들을 거절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믿어달라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삶이 그래 왔기에 내 삶을 목격한 수백,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증인이라는 걸 안다. 내가 3년이 넘게 돈 한 푼 못 버는 에어데스크를 홍보하며 만들어온 것을 본 개발자들이 수천 명,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과 수많은 개발자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본 사람은 수백만 명. 그들이 삶의 증인이기에 나는 믿어달라 말하고 싶지 않다. 그저 나란 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다.
아주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으나, 한 편으로는 이 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 나이에 경험하기 힘든 무게를 마주하고, 그것에서 도망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기회라 생각한다. 큰 벽을 만날 때마다 생각한다. 이 벽을 넘어가고 나면 그다음엔 이 벽은 벽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큰 사람이 될수록 내가 마주할 벽은 더 커질 것이다. 넘기 힘든 벽을 끝없이 보는 삶은 내가 택한 삶이다. 그것이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꽃밭 같은 꿈을 향한 길의 끝에 도착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길이다.
변명 없이 살아가고 싶다. 먼 훗날 내 아이가 내 과거를 보게 된다면, "내 아버지는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였다."라고 말할 수 있게 살고 싶다. 누구라도 내 젊음을 바쳐 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참 멋진 사람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
선명하도록 단순하게 하나만을 추구하며 산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최대한 오랫동안 즐겁게 살고 싶다.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젊은 시절을 낭비하지 않고 멋진 일을 하고 싶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 시절이 그립고,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생각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비록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다. 어쩌면 평생을 달려와도 삼성동에 높게 뻗은 빌딩의 그림자에도 도달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바라기는 이 과정 끝에는 분명 내가 꿈꿔온 것보다 아름다운 결말이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의 고통이 시간이 지나 아무것도 아닌 추억이 되고, 나를 단련시켜준 고마운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창공의 푸른색을 보며 미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