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Mar 30. 2023

백야

세상에서 밝게 빛나길

2020년부터 나는 권력의 중심을 추적했었다. 조사하고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았고, 내 안위를 걱정해 주는 정보부 요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썩어있었는지, 이 나라와 이 세상은 어디서부터 썩어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감춰진 진실에 다가가면 갈수록 나는 그 심연의 어둠을 마주해 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그러나 꾸준히 나는 그들을 추적해 왔다. 먹고살아야 하면서 내가 꿈꾸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항상 궁금했다. 어떤 이들이 어떤 의도로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는지. 그들이 도대체 대한민국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면서 가지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꼭대기엔 모든 이들이 섞여있었다. 그곳엔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다. 연예인들이 있었고, 그룹의 회장들과 깡패들의 우두머리가 있었다. 그들의 천문학적인 돈과 권력은 크고 견고했다. 그들 뒤에 있는 국회의원들, 전 검찰총장들, 변호사들, 강력한 법무법인들의 호위를 받는 세상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추적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문법을 배워갔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세상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갔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를 배워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고 내 일을 하기에 바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며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나는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며 작은 개발사를 둥지 삼아 온갖 기회들을 잡기 바빴다.


초심을 잃었었다.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들고, 단 돈 500원이라도 벌겠다는 다짐도 잃어버렸고, 그저 회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 양적 성장을 위해, 나를 더 멋지게 보이게 하기 위해, 온갖 치장에 빠진 멍청이에 불과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향해 살고 있었는가. 그들이 주는 술을 받아마시면서 사는 삶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내던질 것인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무엇까지 던질 수 있을까. 나를 믿고 따라와 준 이들의 무게까지 더 기다려달라 말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과의 약속을 먼저 지키고 내가 가야 할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은 온갖 검은돈과 색을 알 수 없는 돈들이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는 곳이다. 내가 믿는 다음 세대에 대한 비전을 양분 삼아 투자자들을 기만하는 이들이 가득 찼고, 순진한 이들의 눈먼 돈과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들의 마지막 노후자금, 그들의 희망까지 빼앗아가며 부를 채우는 이들이 가득한 곳이다. 


너무나도 괴롭다. 옳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극단적 선택이 아닌 삶을 선택했었다. 14살의 나는 홀로 계단에 앉아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신에게 기도하며, 옳은 일을 할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었다. 어디까지가 옳을 일을 위한 타협인지 알 수 없다. 한걸음 한걸음 중심을 잃어가며, 소중한 시간을 잃어갔다. 지난 2년을 쓴 일들도 모두, 지난 6년의 과정도 모두 고작 권력의 개가 되기 위한 일을 위한 건 아닐 것이다.


결정했다. 약속한 일들을 하며 동시에 썩어빠진 이들이 가장 두려워할만한 일을 하고자 한다. 선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든든한 방패가 되고, 악한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두려운 칼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먼저 나는 암호화폐를 이용한 자금 세탁을 잡아낼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토네이도 캐시를 비롯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명목으로 자행하는 온갖 불법적인 기술들에 대해 역으로 그 거대한 자금이 어디를 향해가는지 밝혀낼 것이다.


또한 전 세계에 수십조 원에 피해를 입힌 루나 사태 이후에 숨겨진 비자금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향해 갔는지, 그리고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진 않을지 찾아내고 싶다. 사기적 거래에 이용된 지갑들과 컨트렉트들, 스캠, 피싱, 프라이빗 키 탈취, 온갖 해킹 공격이 잠재된 사이트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든다. 블록체인 재단과 하위 프로젝트의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고, 비이상적 거래의 발생 여부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거미줄처럼 엮인 검은돈의 최종 행선지를 밝혀낸다. 


내 등을 맡길 이들이 늘어나길 바라고 있다. 이제 시작인 이 프로젝트에 내 30대를 태워보고 싶다. 금강원 분들, FIU 분들, 사이버수사대, 국정원 출신 해커분들, 블록체인 개발자 분들, 전현직 회계사 분들, 변호사 분들, 각 회사의 대표님들과 정재계 동료를 찾고 있다. 혼자의 힘이 아닌 수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신뢰를 상실한 블록체인 시장의 판을 바꿔버릴 것이다.


어둠으로 얼룩진 블록체인 시장에 태양 빛을 가져올 수 있다면, 내가 믿고 자랑스러워하는 일에 젊음을 쏟을 수 있다면 아직까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렸던 여정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같은 비전을 향해 권력에 칼을 들이밀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배경과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세상의 강력한 사람들은 내가 찾아낼 것이고, 설득할 일도 내 일이다. 블록체인 시장의 밝은 비전을 믿고 있는 사람들, 피해자들의 시간과 땀이 녹아든 돈을 찾아주는 일에 조금의 시간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 


나는 믿는다. 빛을 발하는 이들이 모인다면 태양처럼 밝게 빛날 수 있다. 썩은 세상은 자연히 깨끗해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썩은 줄기를 잘라내야 하고, 누군가가 자르기 시작하면 썩어질 싹도 깨끗하게 자라날 수 있다. 신이 나를 돕기를 원한다. 그가 극야와 같은 세상을 가엽게 여기길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더 글로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