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8월 17일

2023. 8. 17

by 한상훈

결국 어제는 자정까지 일했다. 세 시간만 자고 하루종일 맑은 정신으로 일했던 것은 오랜만이었다.


아침부터 카톡을 보니 온갖 곳에서 죄송하다는 연락이 와있었다. 어제까지 돈을 보내기로 한 곳은 변명을 둘러댔고, 자료를 보내기로 한 곳은 응답도 없었다. 응답을 한참 기다리니 한 곳은 다른 사람에게 물으라 했고, 한 사람은 열심히 애를 썼는지 문제를 해결했다.


금세 오후가 되고 사업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과거에 사둔 Three.js 온라인 강의를 보면서 동시에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구상을 펼쳐보았다. 유수한 성공적인 서비스의 레이아웃을 피그마로 옮겨 레이아웃을 따고, 그들의 플로우맵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큰 모티브는 언제나 레딧이다. 레딧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커뮤니티이면서 동시에 다음 패권을 도전할만한 소셜 서비스라 생각한다. 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모두 즐겨 사용하지만 이곳의 콘텐츠는 너무나도 인싸스럽다. 굳이 표현하자면 콘텐츠 생산에 관심 있는 소수에게나 허락된 곳이고 수많은 관전자를 양산한다. 아예 외톨이로 지내는 친구들은 인스타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들도 세상에 관심이 많지만 잘난 남자, 잘난 여자들 사진보다 다른 게 관심이 많은 것이다.


레딧은 그런 수요에 대해 거대한 공급을 제공한다. 온갖 사안에 대해 논의하면서도 동시에 특정한 편향이 심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대표 커뮤니티는 모두 특정 편향성이 있어 정치 성향에 영향을 받거나 또는 자신의 성향에 맞는 곳을 찾아 떠난다. 레딧은 포챈과 비교해도 훨씬 다양성이 있고, 국가 비율로도 그렇다.


나는 어제 생각한 비즈니스 모델에 레딧의 세밀한 구성요소를 살펴보고, 저녁이 돼서는 앱을 설치해 사용해 보았다. 그러던 중 큰 충격을 받았는데 과거 언더바인드에서 핵심 모델로 쓰려고 했던 기능이 레딧에 구현되어 있었고, 상당히 간결했다.


이윽고 나는 내가 아직까지 실패한 수많은 서비스를 돌이켜보며 모든 것들이 합쳐진 모델을 떠올렸다. 중학생 시절 만든 피마치, 첫 플랫폼인 900스테이지, 이후 시도했던 언더바인드, 일공살롱, 매치업코리아, 심지어는 내가 마지막으로 개발했던 온갖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까지. 여러 퍼즐이

맞춰지자 주커버그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내가 페이스북으로 한 번에 성공한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전에 채팅시스템, 게임, 학습툴, 뮤직 플레이어를 만들었다. “


나는 그를 닮고 싶었고 의도한 건 아니지만 닮은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사업 최초의 모델은 모바일 게임이었고, 미티어를 사용해 채팅 시스템을 만들었다. 온라인 강의 서비스를 만들고 있고, 뮤직 플레이어는 만든 적 없지만, 블록체인 서비스, 토큰 발행, 게시판, 소셜 플랫폼 등을 만들었다.


이후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내가 아직까지 살아오고 배운 모든 걸 합친 서비스를 만들 생각으로 가득 찼다. 체력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마일스톤을 정리하고, 이제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추렸다.


이건 운명일까. 중학교 시절부터 추구했던 것이 이 순간을 위함일까. 그것은 내가 증명해야 할 일이겠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이것이야말로 내 길일 것이다.


저녁엔 언제나처럼 테헤란로를 걸었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평상시와 같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나는 알고 있다. 이 일상은 시간이 지나면 영영 잡을 수 없는 일상이 되리란걸. 사는건 감사한 일이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건 감사한 일이다. 같이 조금씩 늙어가며 추억을 쌓을 수 있다는건 더욱 더 감사한 일이다. 운명같은 싸움을 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이 평범하고 감사한 순간이 찬란하게 느껴졌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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