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여정

8월 18일

2023. 8. 18

by 한상훈

일을 하다 보니 새벽 3시쯤 잠에 들었다.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도 에어컨을 꺼도 답답한 그런 날씨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어제 조사하던 내용을 마저 찾아보다 보니 금방 점심시간이 됐다. 점심 미팅을 집에서 10분 거리에 한 남도 한정식 식당이었다. 내 주선으로 만나게 된 모임이었지만 내가 할 말은 별로 없었다. 처음 만나는 분들을 소개해 드리고 짧은 식사를 마쳤다. 서로가 각자에게 몇 가지 숙제를 주기도 했다. 일이 진행되기 위해선 모두가 조금의 노력을 하면 될 것 같았다.


미팅이 끝나고 나는 해외 법인 설립을 위해 같이 식사했던 이사님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이사님은 나에게 한 국가를 추천해 주셨다. 오후 2시가 지나 미팅을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가 그 국가의 관계 법령을 조사했다. 내가 하려는 사업 모델이 적법한 곳인지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하려는 사업은 한국에서는 불법이 아니지만 라이선스를 취득하는데 엄청난 비용과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사업의 대상 국가도 한국이 아닌 전 세계였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야 하는 건 필연적이었다.


적합한 국가를 찾다 보니 한 국가를 찾게 됐다. 정확히는 3개의 국가 후보가 놓였다. 3개 중 2개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국가였고, 한 곳은 지식이 적어 이 분야에 전문가라 할만한 분에게 연락을 했다. 감사하게도 바로 전화가 와서 안부도 묻고 내가 하려는 사업의 법인 등록 과정을 문의했다. 내 여권 사진과 법인명으로 쓸 후보를 전달하고, 서로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짧게 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오랜만에 머리를 깎으러 미용실로 향했다. 벌써 2년 가까이 간 곳이다. 디자이너님을 2년간 보면서 1년 반은 마스크를 쓰고 계셨기에 얼굴을 제대로 못 봤는데 지난 6개월 전부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머리를 깎으며 딱히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지만 스스로도 만족하고, 분위기가 편해서 계속해서 가고 있다. 이번엔 스타일을 조금 바꿔 영화 "크로우즈 제로"에 나오는 주인공 "겐지"처럼 윗머리만 남기고 옆머리를 말끔히 쳐내는 스타일을 할까 했다. 디자이너님은 길이가 아직 부족하니 옆만 짧게 하고, 뒷머리는 남기자고 제안 주셨다.


머리를 깎이다 보니 어느 순간 무척 즐거웠다. 여름이라 답답했는데 한쪽 옆머리가 나름 시원하게 잘려나간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미용실에서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즐거워한 적은 별로 없는데 오늘이 그랬다. 잘린 옆머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머리를 깎고 나서 나는 내가 감리로 있는 회사에 대표인 친구를 불러 몇 가지 사업 아이템을 설명해 주었다. 이 친구와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의 대화 주제는 정해져 있다. 사업, 경제, 친구들. 사업이야 나나 친구나 하는 분야다 보니 언제나 최우선으로 이야기를 하고, 그다음 각자가 보고 있는 경제 상황이나 비즈니스 가능성을 논의한다. 그리고 친구들 근황이나 새로 사귀게 된 친구가 있다면 이야기를 한다.


짧게 이야기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언제나처럼 안부 인사였다. 나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할 때 특별한 목적을 두지 않는다. 오늘은 어땠는지. 식사는 하셨는지. 특별한 일은 있었는지. 대부분 평온한 하루를 보내시기에 목소리를 듣고 건강하신지를 확인한다. 저녁이 돼서 지난번 식사를 대접해 준 친구를 불러 이번엔 내가 식사를 대접했다. 강남에서 유명한 닭갈비 집에 갔다. 나는 식단조절을 해서 그런지 많이 먹지 못했다.


이 친구와는 만나면 항상 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는 걸 즐긴다. 갑자기 온 세상이 좀비가 돼서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던지, 타노스가 와서 인구의 절반쯤 시원하게 지워주면 이 빽빽한 강남도 사람이 적을까 라던지. 형광색 정사각형의 거대한 옷을 입고 이곳을 걸어 다니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 같은지.


나는 상상력이 풍부해 사업을 하는 친구와는 사업에 대한 상상력을 펼치고, 사업을 하지 않는 친구와 만나면 온갖 엉뚱한 소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내가 나중에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서 회장 자리에 오르면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할 거야. 그러면 면접을 보러 오는 젊은이가 나에게 자리를 비켜주면서 말하는 거지.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그러면 나는 "고맙네." 하고 앉아서 가다가 같은 회사에 들어가지. 그리고 로비에서 물걸레질을 하고 있으면 사장이 와서 나에게 그러는 거야. "회장님 걸레질 그만하시라니까 또 하고 계세요!" 그러면 나는 작업복을 벗으면서 양복으로 바뀌고 면접장에 가는 거지."


"면접장에 온 친구는 자신이 나에게 자리를 비켜준 걸 알고 나를 신기하게 볼 거야. 그리고 아주 열정적으로 면접을 보겠지. 어쩌면 그때의 선행으로 자신이 뽑힌다고 생각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걔를 뽑지 않을 거야. 면접은 공정하게 실력으로, 면접 전의 작은 선행과는 별개로 평가해야지."


나는 나중에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회장이 됐을 때 할 엉뚱한 짓을 10분 넘게 떠들고 있으니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런 걸 보통 망상이라 하지." 맞다. 하지만 망상도 10년 20년을 하다 보면 현실이 되곤 한다. 나는 현실에서 내가 꿈꿔본 그런 일들을 꼭 이뤄보고 싶다.


식사와 후식도 마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일을 하지 못했다. 덥고 습했고, 디자인을 하기 귀찮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담긴 UI 디자인을 해야 했으나 쉬고 싶었다. 좋아하는 007 시리즈를 다시 보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내가 꿈꾸는 모든 걸 이제 만들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쉬어도 될까? 내 눈앞에 원하는 것이 있는데?'


맞다. 나는 내가 원하는 걸 만들 소스코드로 수년에 걸쳐 쌓아 두었고, 기술도 있고, 인맥도 있고, 디자인도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이를 위한 시간도 있다. 그저 막고 있는 건 UI 디자인을 하나하나 작업하는 게 나을지 아니면 머릿속에 있는걸 바로 코드로 옮기는 게 나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존에 만들어둔 소스코드를 병합하는 과정에서 스타일 충돌을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을지도 고민됐다. 과연 무엇이 정답일까.


나는 스스로를 반추해 보는 습관이 있다 보니 이런 결론을 가지고 산다.


'사람이 무언가 하기 싫다면 거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이유가 두려움이건 아니면 하기 싫은 어떤 특별한 부분이건. 아니면 본질적인 괴로움이건. 하기 싫은 데에는 하기 싫은 이유가 있고, 하고 싶은 데엔 하고 싶은 이유가 필연적으로 있다고 믿는다. 오늘 내 경우엔 2가지에 대한 고민과 한 가지 더 인간적인 고민이 있었다. 바로 외로움이었다. 하루종일 친구를 만나고 미팅을 하고, 전화를 하고, 쉼 없이 보냈음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게 문득 느껴졌다. 우정, 파트너십은 있지만 이성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고, 오직 목표만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 걸 점심에 미팅을 가면서부터 계속 느껴졌다.


기계 같을지도 모른다. 조사를 하다 보면 중간중간 연락 오는 모든 것들. 오늘도 2시쯤 NFT 프로젝트에 대한 총괄 개발 사업 논의도 있었고, 그다음엔 신규 애플리케이션 투자 관련해 IR 자료 문의를 받았다. 카카오톡 메시지 창에 맨 위에 올라오는 사람이 수십 번씩 바뀌고, 전화를 그렇게 많이 해도 사랑할 사람이 없다는 건 쓸쓸한 일이다.


감사하게도 요즘 소개를 해주겠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사람을 종종 만날지도 모르겠지만, 나처럼 광기에 빠진 듯 살고 있는 사람을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직업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하는 사업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하는 일이 10가지는 되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꼭 한 번 성공하고 싶은 사업을 위해서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쓰고 있다. 내 지금 삶에 누군가 들어올 자리는 있을까. 아니면 잠깐의 휴식을 때우기 위한 여흥 같은 관계를 원하는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내일도 모레도 모든 일정이 목적지를 향해 세팅되어 있다. 그 모든 걸 뒤로 미뤄도 가지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국가에 법인을 설립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어쩌면 나는 성공에 타는 목마름을 가지고, 사막을 걷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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