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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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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Feb 10. 2024

눈이 있으나 볼 수가 없도다

2024. 2. 10

나는 글을 선호한다. 사람들은 슬라이드와 PPT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지만 파편화된 이미지와 메시지 사이에는 수많은 허점이 있다.


영상도 그렇다. 편집된 장면들과 연속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은 깊은 생각과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눈에는 멋지지만 그 안에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우와’하는 말로 넘어가는 것이다.


나는 누군가가 쓴 글만 봐도 그 사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메일을 보면 비즈니스를 해봤는지, 언어의 완성도가 있는지 길게 볼 필요 없이 알 수 있다. 자신의 생각을 정돈된 글로 옮기지 못한다는 것은 선명한 생각이 아닌 흐릿한 감정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긴 글을 읽지 못하는 시대가 됐기에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참으로 특별하다. 눈은 있으나 읽지 못한다. 가나다라, 한글을 배웠으나 이해하지 못한다. 목소리를 얻었으나 말하지 못하고, 연필을 잡는 법을 배웠으나 한 글자 써본 적이 없다.


눈 뜬 맹인들의 시대. 그것이 지금이다. 그들을 위해 시선을 끌려면 글이 아닌 이미지와 자극적인 말들. 한두 문장으로 정돈되는 메시지만 남아 짤막한 글귀들로 세상에 전달된다. 아주 쉬운 요리를 배운다 해도 절차가 여러 개 일 텐데 인생에 대한 메시지와 온갖 철학적 메시지는 30초의 영상에서 다각도로 재생산된다.


무한한 소비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 지난 수년간 삶이 달라졌을까. 아니 그것을 판 사람들이 부유 해졌겠지. 그걸 소비한 수백만수천만의 사람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의 신앙을 팔고 도파민을 판다. 그래서 진짜 메시지가 담긴 것을 볼 수 없고, 쓰레기를 주워 담는다.


사람의 몸은 먹은 것을 이용해 세포를 만드는 것처럼, 본 것과 들은 것은 가치관을 만들고, 사상과 세계관을 구성한다. 모두가 자신의 돈을 욕망에 팔아넘기고 있으니 욕망의 세계로 눈을 갈아 끼웠다. 눈먼 자들의 도시. 그런 곳에서 눈 뜬 사람들은 빛을 말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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