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여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Feb 21. 2024

무지의 삯

2024. 2. 21

불편한 내용을 전달할 때는 쉬운 단어로 전달하지 말아야 한다. 불편한 내용이 귀에 들어갈 때, 감정이 불쾌해진 이들은 논리가 없이 물어뜯곤 한다. 그리고 조금의 논리를 담아 엉뚱한 헛소리를 댓글에 달아두면 그것이 "일침"이라 생각하며 동조하는 이들이 수 십, 수 백 명으로 늘어난다. 결국 초기 대응이 안되면 어설픈 논리는 대응 못할 논리로 확장된다.


언어가 어려워지면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내용을 보아도 화가 나지도 않고, 무관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비극이다. 정규 교육과정 12년과 대학 교육 과정 4년을 걸쳐 만들어진 인재들도 언어가 조금만 어려워지면 그것이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 여기고 이해를 포기하곤 한다.


이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면 권력가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면서도 군중의 지대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아이러니한 셈이다. 자신들의 땀과 노력, 시간을 잘라내 보내는 세금을 자발적으로 양도하는 것이다. 16년간의 교육을 받아도 여전히 '무지의 삯'을 내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희극이자 비극이다.


계몽은 말이 안 된다. 어떠한 사안과 사회 문제에 대해 수많은 노이즈가 섞인 데이터에서 주관을 가지고 판별할 능력은 스스로 만들어내야 할 능력이지 타인의 도움으로 얻는 게 아니다. 마치 운전을 하는데 어떤 것이 장애물인지, 사람인지, 박아도 되고 안 되는 건 무엇인지 하나하나 가르치는 셈이다.


무지의 삯을 내는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무지가 밝혀지는 것이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선명하게 나타낼 수 없다. 술자리와 소수의 사람들 앞에서는 신나게 떠들어 대던 온갖 전문적인 지식을 정작 대중들 앞에서는 겁먹은 강아지처럼 숨기 바쁘다.


이들의 비극은 비단 자신의 삶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지로 인해 악인들에게 권력을 양도하고, 사기꾼을 옹호하고, 자신을 세뇌시킨 이들을 광적으로 보호하기에 이른다. 얼마나 가지고 놀기 쉬운 인간상인가.


온갖 사람들은 자신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홀린 듯 그들을 따르고, 순종하며, 한쪽에서 제공하는 정보만을 듣고, 그들의 스피커를 추종한다. 이를 악용하는 이들은 허상의 이미지를 만들고, 허상의 부를 쌓고, 허상의 위상을 만들곤 한다.


타인의 무지를 이용한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들은 진실을 두려워하고, 진실을 담고 있는 정보를 두려워하며, 진실들이 켜켜이 쌓인 '역사'를 두려워한다.


그들에겐 역사가 가장 감추어야 할 기록이기에 그들은 모든 힘을 다해 자신들의 역사를 감추고, 왜곡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역사를 밝히는 이들을 매수하기 급급하다. 많은 사람들은 스피커를 선별해 듣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느냐에 따라 운명의 방향은 크게 요동친다. 군중이 잘못된 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 국운이 떨어진다. 이것에 초연한 이들은 요동과 무관하게 살 길을 찾기 바쁘다. 그래서일까.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도리어 군중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가려 하는 이유는.


그렇기에 지혜로운 이들은 전달하고자 하는 깊은 진실을 쉽고 간단한 언어로 표현하지 않고 비유로 담는다. 많은 사유가 담겨야 한다면 흑과 백의 빼곡한 글씨 사이에 숨긴 진실을 담는다. 거대한 정보 구덩이 속에 읽기 싫어 보이는 장문의 텍스트로 말이다.


값을 모르는 이에게 귀한 물건을 전달하면 안 된다. 진실이 밝혀져선 안된다. 무지의 삯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서도 안된다. 그들을 계속 토닥여 "넌 잘하고 있어." "넌 최고야."라고 말하며 속여야 한다. 그것이 수백만, 수천만, 수억 명의 바보를 양산하는 진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