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 26.
6년 전쯤일까.
아니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여러 종교적 물음을 가지고 많은 종교 지도자 분들을 만나고 다녔다. 대학생 시절에는 선교회에 있었고, 모태 신앙으로 오랫동안 작은 교회에도 다녔다. 대학 시절 서울로 상경하고, 나는 신학생만큼은 아니겠지만 참 성경을 많이 읽었다. 그러던 중 성경의 모순점으로 보이는 수많은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만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분들을 만나려 애썼다. 지금은 타계하신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 목사님, 그 당시엔 이미 돌아가셨던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 분들, 그리고 선교회에 속한 선배들과 선교사님들까지. 참으로 많은 질문과 신학적 해석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었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것은 모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용기 목사님도, 옥한흠 목사님의 제자 분들도, 선교사 분들도 모두 다른 성경적 해석을 가지고, 기준을 가지고 성경을 해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장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누구였을지 아는가? 타고 타고 가다 보니 사이비 밑에 들어간 목사와 전도사들도 있었다. 그들은 처음엔 자신들이 유명한 목사님의 제자이고, 어떤 교회의 전도사라는 말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사이비 집단의 중간 라인들이었다.
기가 막힌 사실에 나는 숨은 진실을 찾아보려 성경의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다녔다.
많은 기독교 인들이 모르는 사실이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성경이 번역본마다 오류가 많다는 점이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성경들은 17세기 중국에 들어온 성경을 다시 번역한 성경이 대다수였다. 그렇다면 중어 번역본은 완전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중어 번역본은 영미권 선교사들이 가져온 성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영어를 번역한 성경이었다. 그렇다면 영어 번역본은 온전한가? 아니다.
영미권 번역본은 다시 유럽으로 전해진 성경을 번역한 것이고, 유럽으로 전해진 성경은 다시 그리스로부터. 그렇게 히브리어 > 헬라어 >... > 영어 > 중국어 > 한국어라는 수많은 절차를 밟고 들어온 게 초기 한국 기독교다. 그렇다면 번역본의 내용에 따라서 교리가 생기고 무너질만한 이야기가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당연히 있다. 바로 지옥에 대한 해석이다.
성경을 수백 번은 봤다는 크리스천들도 모르는 것 중 하나는 구약에 지옥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구약에 지옥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구약에서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은 스올(sheol) 또는 아브라함의 품 정도로 표현이 된다. 그리고 스올은 모든 죽은 자들의 영혼이 쉬는 곳(또는 볼 수 없는 세계, The unseen world)으로 표현되고, 다윗도 자신이 죽어 스올로 간다고 했을 정도로 지옥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절대 볼 수 없다. 그렇게 유대인의 관점에서 구약 성경이 전해진 수천 년의 기간 동안 지옥이라는 개념, 그리고 천국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지옥과 천국의 개념이 없었는데 신약에서부터 사후 세계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편집과 오류들이 속출하게 된다.
신약에서 나오는 지옥은 크게 3가지 단어로 표기된다. 하데스(Hades), 타르타루스(Tartarus), 게헨나(gehenna). 이 중 하데스는 스올의 대체 단어로 일반적으로 죽어서 가는 무덤의 의미로 많이 사용됐고, 타르타루스는 배반한 천사들이 심판받는 곳으로 인간과 인간들의 사후 세계에 대해 표현된 단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옥불구덩이와 같은 표현이 들어가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게헨나뿐이다. 그렇다면 게헨나가 사람들이 죽어 가는 지옥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을까?
게헨나는 고대 예루살렘의 계곡 '힌놈의 아들의 계곡'에서 유래한 말로, 이곳에서는 인간의 시체와 쓰레기를 불태워 처리했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죽음과 파괴, 불결함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실제 장소이며, 끔찍한 일을 자행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장소를 비유적으로 사용할 때 많이 쓰였다(과거 우상숭배하는 이들이 몰살당한 곳이기도 함). 그러나 게헨나가 그런 의미라고 해서, 죄인들이 게헨나에서 고통받을 것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죽어 영혼이 영원한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하데스는 어떨까? 하데스도 해석하기 어려운 단어라 볼 수 있다. 가령 누가복음 16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나오는 음부 또는 지옥이 영문 표현으로 하데스에 해당한다. 이 구절에서 하데스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스러운 장소로 표현한다. 그전까지 하데스와 스올이 죽은 자들이 평온하게 쉬는 곳이었던 해석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하데스는 죄 지은 자들이 가는 영혼의 고통 받는 공간인가 아니면 비유적 표현으로 사용된 심판의 메타포인가.
그 밖에 지옥에 관한 내용으로 마가복음 9장 43절도 사용된다.
"네 손이 너를 죄 짓게 하거든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불구자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 KLB
여기서 나타나는 지옥은 게헨나이다. 또한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표현도 영혼이 꺼지지 않는 고통을 겪는 것과 연결해서 이해하곤 하는데 그것 또한 적절한 해석이 아니다. 게헨나는 앞선 설명처럼 불태우고, 재만 남은 역겨운 것들이 타들어간 소각장 같은 곳이다. 즉 멸망이라고 표현된 것은 영원한 고통이라기 보다는 불타버리고 남은 재처럼 소멸에 가까운 표현이다. 즉 게헨나는 영원한 멸망, 소멸의 관점으로 볼 수 있으며 신약에서 더해진 개념인 천국은 또 다른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흔히 지옥이라고 알고 있는 성경 구절에 대해서는 단어의 원문을 통해 해석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향하게 되는 구절들이 많고, 동시에 이를 바탕으로 영혼이 끝없는 고통을 받아 죄인은 영원한 불지옥 같은 내용으로 교리가 완성된다면 그것 또한 매우 위험한 것이다.
그렇기에 지옥이라는 개념을 흔드는 순간, 불신지옥의 개념을 공유하는 기독교뿐 아니라 천주교의 근간까지 흔들리는 해석이 시작된다.
기독교는 다들 알고 있듯, 천주교에서 빠져나와 개신교라고 부른다. 그런데 천주교나 개신교 모두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이라는 명제는 공유하고 이를 성경적 진리로 여기면서 유대교와 대립각을 만들었다. 이러한 해석은 기원 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단어적 측면에서 본다면 게헨나로 표기된 곳에 죄인들이 심판받는다는 표현이 어떻게 영혼이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이 무너지게 되면 천주교와 개신교의 근간인 "영원한 고통을 받을 죄인에서 구원해 준 예수님"이라는 교리마저 흔들리게 되는 셈이다.
즉 죽어서 죄인들이 가는 지옥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리의 근간은 흔들리고, 죄인들을 구원해야 하고, 선교자들이 피를 흘려가면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수많은 메시지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이다. 나는 이것의 정답을 찾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관련한 문서와 이에 대해 신학적 견해를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보다 잘 답변할만한 분들을 찾아다녔으나 놀랍게도 애초에 이런 사실을 모르거나 또는 엉뚱한 논리를 끄집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지옥에 대한 표현은 아주 오랫동안 잘못된 표기로 이어져왔고, 특히 영어 번역본에서는 지옥을 헬(Hell)이라고 하는 단어로 퉁쳐서 표현하는 오류를 수없이 범해왔다. 즉 해당 성경을 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단어적 차이가 존재하지도 않고,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지옥이라는 표현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개념과 이어져 지옥의 개념, 영원한 심판, 죄의 형벌이 따라온 셈이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양심적인 성경들은 이와 같은 오류를 해결하고, 앞서 제기한 지옥에 대한 단어적 오류뿐만 아니라 성경에 있는 수많은 해석의 오류를 야기할 단어를 히브리어 본문을 바탕으로 직접 해석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경 자체도 해석의 문제가 있게 번역이 됐고, 그와 같은 성경의 메시지에 따라 교리를 만든 종파 역시도 메시지를 끼워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글에서는 지옥에 대해서 다루고 있지만 해석이 이상한 단어는 지옥 외에도 또 있으니 바로 "영원한(eternal)" 이라는 표현이다. 유대인들에게 영원한 이라는 표현은 실제로 "오래 지속되는" 또는 "한 세대 동안 지속되는" 정도의 표현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무한대의 영원"의 의미로는 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전달하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 중에 얼마나 이와 같은 사실을 전달하는 이가 있는가? 대부분은 영원한 형벌, 죄인은 불구덩이에서 말그대로 영원한, 끝없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서 공포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최초의 목회자이자 가장 위대한 사도라 볼 수 있는 '사도 바울'은 이 지옥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전했는지 알고 있는가? 그는 바울 서신 13개를 작성하여 신약 성서 27권 중 13개를 기록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그의 서신에서 단 한 곳에도 지옥에 대한 표현은 없다. 단 한 곳에서도 지옥에 대한 표현은 하지 않았고, 도리어 천사와 함께 올라갔던 천국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 위대한 바울은 지옥의 공포와 심판의 두려움에 대해서 다루지 않았을까? 왜 천사는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불지옥에서 고통 받으며 끝없는 고통을 받는지 보여주지 않았을까?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신의 메시지로 생각하여 절대적인 진리라고 보긴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편집되고 재해석된 결과물이다. 이미 예수 사후 나타난 수많은 예수에 대한 기록들 중 믿을만한 것을 골라 성경을 취합했다. 믿을만하지 못한 성경은 어떻게 됐을까? "외경"이라 불리며 성경에 들어오지 못하고 탈락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경은 일치하지 않을까? 아니다. 천주교는 개신교보다 구약이 7권 더 많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같은 신을 섬기는데 성경의 권수가 아예 차이가 난다. 이 7권은 후대에 기록된 그리스어 성경인데, 기원후 90년경 유대인들의 결정에 따르면 히브리어가 아닌 그리스어로 작성된 것은 성경이라 볼 수 없어서 뺀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천주교인들이 맞는 것인가?
기독교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은 또 어떤까? 이곳은 유대교를 믿는다. 유대교에서는 또 성경이 다르다. 이슬람은 어떤가? 이슬람에서는 모세5경과 코란을 믿는다.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종교마다 무엇이 진짜 진리인지 서로 기준도 다르고, 기준에 대해 번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를 품고 갈 것인지 아닌지에 따라 교리도 다르고, 모순된 해석을 바탕으로 세워진 교리를 진리라고 가르치는 이들도 있으니 무엇이 진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성경 말씀에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라는 말씀이 있다.
내가 보기에 열매를 보고 어떤 나무가 선한 나무인지 판별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상황이라 생각한다. 더욱이 교리의 근원에 대해서도 성직자들과 신학자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같은 종파에서도 목사마다 다른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으니 도대체 누가 선한 목자이며, 누가 악한 목자인가?
지금 내가 글에서 말한 이 논쟁은 놀랍게도 예수가 죽고 단 100년도 안돼서 생겼던 해석의 논쟁이며, 거기에서 해석된 것에 따라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아무 이유 없이 죽었으며, 구원을 받기 위해 면죄부를 샀었고, 어떤 이들은 메시지에 현혹되어 목숨을 걸고 타인을 죽이기도 한다.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하고 있고, 누군가는 신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면서 성도들의 헌금을 빨아먹는다.
지옥이 어디 있는 것 같은가?
어쩌면 이 세계가 지옥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