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8.
과거 나치에는 성실한 공무원들이 많았다. 성실한 공무원들은 성실하게 가스 배출 버튼을 눌러 매일매일 유대인을 죽였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믿었기에 도덕적 판단을 잃어버렸다.
과거 삼성 SDS에서는 하이패스 경쟁 상대였던 포스데이터가 입찰에서 이기는 것을 막기 위해 직원이 방해전파를 쏴서 정상적으로 하이패스 신호를 수신하지 못하도록 했다. 해당 직원 2명은 렌터카를 빌려 방해 전파를 쐈고, 결과적으로 징역 2년형에 처한다.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의 최근 구속 수사가 시작됐다. SM 주가 조작 사건 때문이다. 카카오는 그룹의 크기보다도 말도 안 되게 많은 계열사로 한국 투자 시장을 엉망으로 만든 대표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쪼개기 상장은 마치 직원들의 휴가를 챙겨주지 않기 위해 사업자 쪼개기를 하는 악랄한 법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쯔양 논란과 더불어 사이버 렉카들은 줄줄이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 수사의 대상으로 올라왔다. 정의를 찾는다더니,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사람들이 도리어 약점을 손에 쥐고 협박과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 때문이다. 재밌게도 쯔양과 같이 천만명이 구독하는 대형 유튜버가 피해자가 되니 검찰이 바로 움직인다. 그전부터 있었던 수많은 범죄자 유튜버들의 수사가 진척되는 속도에 비하면 가히 놀라운 수준이다.
축구협회도 논란이다. 아는 사람이라 면접도 없이 국가대표 감독을 선임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십만이 넘는 축구팬들은 세금이 수백억씩 들어가는 축구협회에 분노하고 있다. 월드컵도 필요 없으니 뿌리부터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치 시절에 유대인을 학살하던 공무원과 같은 선상에서 악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악은 그렇게 평범하게 사람들의 양심을 깎아내려간다. 오랫동안 깎인 양심과 정의는 찾을 수 없고, 오직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생존의 이름으로 발악하기도 한다.
악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논리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간단한 논리도 답변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된다. 구질구질하게라도 달라붙어 살아남아 볼 것인가, 아니면 뿌리부터 썩은 조직에서 벗어나 양심고백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양심 고백을 하고 자신의 죗값을 온전히 치르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끝없이 이어지는 변명과 변명 속에서 과거의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지 못하며 결국은 구차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한다. 악은 사람을 구차하고 보잘것없게 만든다.
나는 사업을 하면서 최소한의 양심을 버린 기업들을 종종 마주했다. 그 기업들의 대표들이 뻔뻔스럽게 사회에 나와서 허풍을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속에 분노가 차오르곤 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뻔했다. 자신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를 자랑하거나,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는지를 자랑하거나, 가짜로 만든 숫자를 바탕으로 자랑하기도 한다. 100만 구독자를 만든 유튜버는 대단하지만, 100만 구독자를 돈 주고 산 유튜버도 똑같이 대단한 걸까.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들은 비단 악의적인 집단이나 기업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 전 쿠팡은 PB 상품의 순위를 조작하여 논란이 됐다. 그뿐 아니라 임직원들의 구매 후기 작성도 평균 4.8점이라는 점수를 주고 상품을 끌어올리는 일을 하였다. 돈을 주고 리뷰를 사고, 돈을 주고 댓글을 사고, 돈을 주고 팔로워를 사고, 돈을 주고 좋아요를 산다. 어떤 이름으로?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몇몇 마케팅 기업들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아무런 도덕적 책임을 느끼지 못한다. 돈 주고 조작하는 것, 불리한 리뷰를 다는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거나 보상을 주고 삭제하게 하는 것 등. 소비자가 정상적으로 상품에 대해 판단할 권리를 당당하게도 빼앗는다. 세상은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로 밥 벌어먹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을 역지사지를 도저히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여긴다. 해외 호텔을 예약할 때 최고 평점인 호텔을 가보니 최악이었다면, 모든 리뷰는 다 조작된 것이어서 신혼여행도 망치고, 부모님과 어렵게 용기 낸 여행도 망쳤다면. 그래도 리뷰 조작이 떳떳할까.
악은 이처럼 이중잣대로 자신에게는 생계를 위한 당연한 일이라 여기게 하고, 반대로 자신이 똑같은 일을 당하면 분노하는 인지부조화의 인간을 창조한다. 결과적으로 악을 업으로 삼은 이들은 악의 열매로 자신마저 속이는 결말을 맞이한다.
악은 평범하게 사람들에게 스며들기에 주의해야 한다. 나는 종종 기업에 취직한 사람들에게 해당 기업이 어떤 일로 수익을 얻고,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하는지 잘 알아보라고 한다. 왜냐면 많은 기업의 뿌리로 향할수록 절대로 해선 안될 악의 결과물이 가득하고, 결과적으로 내 성실함이 그 악인들의 배를 넉넉히 채워줄 수도 있는 것이다.
성실하게 일한 나의 노동과 시간이 악인들의 배를 채워주고 있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고, 누군가를 기망하고, 속이고, 생명과 같은 돈을 빼앗는 일인지 판단할 생각을 포기한 이들도 있다. 애초에 판단을 포기하고 마치 나치의 공무원들처럼 시키니까 하는 기계가 된다. 스스로 가치판단도 하지 못하며 기계처럼 주어진 일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이 사람인가 기계인가. 성인인가 아이인가.
악이 익숙해져서 이미 망가져버린 뇌에는 돌이킬 희망이 없어 보이기도 하다. 마치 이런 것이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는 도로를 무단으로 건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지키는 사람이 있고, 알면서도 절대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버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온갖 핑계로 기어코 길바닥에 버리는 흡연자들이 있는 것처럼.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고 그 작은 차이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사회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는 이 사회에 대해 사랑이 말라가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은 땅처럼, 악에 잠식당해 자신도 납득 못 시킬 인지부조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을 잘하는 이들이 어쩌면 이 세상에서 잘 나가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거대한 나무와 같은 수많은 기업들이 무성한 잎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안에 좀먹고 있는 기생충과 벌레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기생충과 벌레들은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나무가 필요할 뿐, 나무를 위해 자신이 존재하는 게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나무를 속에서부터 파먹고, 결과적으로 나무를 무너뜨릴 것이다. 물론 거대한 나무가 죽고 나면 기생충은 다른 나무를 찾아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자신들 역시 말라죽어버릴 테니.
악은 기생충과 같다.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서 선을 넘어 파먹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신뢰를 파먹는다. 모두가 조작된 것임을 알아버리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믿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조작을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중국 물건을 비판하며, 중국 제품은 중국인도 안 믿는다고 말하곤 하지만 신뢰가 떨어지고, 상식이 무너진 사회가 된다면 우리나라라고 특별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대한민국의 사회의 서로 간의 신뢰는 이미 바닥날 대로 바닥났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차량용 블랙박스 비율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나이롱환자가 많은지 교통사고 전문 한방 병원이 돈방석에 올랐고, 그것만을 위한 서비스를 한다고 홍보하는 곳까지 생겼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기에 다친 사람은 한방 병원 티켓으로 한몫 챙겨볼 생각을 하고, 친 사람은 어떻게든 줄이기 위해 블랙박스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이미 개미 투자자들의 신뢰를 모조리 잃어갔다. 이제 미국 주식을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인데, 어느 누가 쪼개기 상장이나 하며 투자자들 바보로 만드는 시장에 투자하겠는가. 국민이 자국의 시장을 버렸는데 누가 이 시장에 투자하겠는가. 야금야금 신뢰를 깎아먹은 우리의 기업인들이 결과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랐다. 야금야금 갈아먹은 기생충들이 거대한 나무의 허리를 끊어버렸다.
악의 결과는 언제나 선명하다. 공멸이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죽고 있다. 작은 회사를 힘겹게 이끄는 사장을 험담하며 회사를 망하게 하는 직원들도 이 사회에는 있고, 반대로 투자자들의 돈을 빨아먹고 이익을 취하고 회사를 버리는 사장들도 있다. 모두가 먹고 먹히는 정글 같은 사회. 어쩌면 이곳에서는 정의가 없는 건 아닐까. 마치 정글에서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으면서 도덕을 논하지 않는 것처럼.
종종 정글의 법칙을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사업가들을 만나곤 한다. 먹고 먹히는 것이 세상이라면 잡아먹히기 전에 잡아먹겠다는 마인드다. 그렇기에 입찰을 따내기 위해 방해 전파도 쏠 수 있는 것이고, 주가 조작도 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누가 옳다 말할 수 있을까. 정글의 법칙을 따라 정글 사회의 꼭대기에 올라간 짐승이 있다면, 그 짐슴의 입에는 피가 가득하지 않겠는가. 모두를 잡아먹고 피가 가득한 정점에 오른 짐승에게 잘 보이는 게 옳은 일일까. 아니면 무고하게 잡아먹힌 이들을 위해서라도 짐승의 목을 따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 우리가 만든 사회는 어쩌면 도덕의 껍데기만 있는 짐승의 세계와 하나도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 역시도 언제 태어나 죽을지 알 수 없는 짐승보다 나을 게 없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