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6.
오늘은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몇 주간 온 힘을 다해 일을 해서일까. 쉬어야 한다는 강박이 드는 것 같은 하루였다. 그럴만했다. 돌발성 난청 증상으로 병원에 다녀오기도 하고, 밤 9시에 졸도 증상이 나타나 몸이 덜덜 떨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상황은 정상은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뻔한 하루를 쌓아가며 살고 있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게 내 일이고, 내가 선택한 삶이었으니.
재밌게도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로 가면서도 딱히 정신적으로 괴롭다고 느끼진 않았다.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 때문일까. 밤이 낮이 된 것처럼 일하고, 낮은 내가 좋아하는 새벽이 된 것처럼 일하고. 피를 타고 흐르는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잠은 깊게 잘 수 없었다. 아침 7시에 잠에 들면 2시간 후 아침 9시에 일어났다. 다시 저녁 6시쯤 에너지가 모두 사라져 잠에 들면 11시도 안 되어 잠에서 깼다.
돌발성 난청 증상은 새로웠다. 코가 막힌 것도 아니고, 귀가 막힌 것도 아닌데 오른쪽 귀가 먹먹했다. 말을 할 때면 오른쪽 뇌가 울리는 듯한 공명이 생겼다. 전화를 할 때마다 울리는 내 목소리가 어느 정도 크기로 상대에게 들리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왼쪽과 오른쪽의 청력 차이는 꽤 생겨있었다. 하지만 아직 약물 처방을 할 수준 까지는 아니라고 한다. 지금 정도의 차이만큼 이 더 생기는 시점부터는 굉장히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하면서 주사 치료를 하면 된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강력한 항생제라... 해결책이 명확해서 좋구먼 싶었다.
지난주에 졸도와 비슷한 증상이 생겼을 때 나는 문득 손정의 회장님을 생각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인 손정의 회장님은 내 나이쯤 병원에서 6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사망 선고를 들었다고 했다. 간염으로 인한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았을 때, 그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겼던 인생의 꽃다운 순간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업가에게 과로는 전사들이 전쟁에서 생기는 상처와 흉터와 다르지 않다 생각한다. 인생을 걸고 사업하는 사람들 중에 정상인 인간은 없다. 다들 어디 하나 나사가 빠진 건지는 몰라도 성공을 향해서 지 몸이 부서지는 것도 모르고 달리기에 급급하다. 누군가는 "건강도 챙겨가면서 해야지"라고 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말은 성립이 불가하다. 때로는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게 있는데, 사업을 하다 보면 돈, 시간, 그리고 젊음과 건강까지도 포기하게 된다.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사업가들의 삶은 뻔하다. 그저 미친놈처럼 눈앞에 아른거리는 성공을 향해서 허둥지둥 뛰기 바쁘다. 왜 그렇게 간절히 성공을 추구할까 생각해 보면 이유야 많겠지만,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야 말로 진정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이제 이 글을 마치고 밖에 나가면 라면 몇 봉지와 또 몇 주를 이겨낼 식량을 비축해 둘 것이다. 뻔하고 뻔한 인생. 언제쯤 모든 것에서 자유를 찾을지는 모르겠지만, 목적지에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뻔한 인생을 살고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내 인생을 타임머신을 타고 칼로 잘라 특정 시점을 뜯어본다면 비슷하겠지. 5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 난 그렇게 뻔한 인생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