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밌을 수가 없지."
오일남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게임' 시즌 1에서 오일남은 게임의 호스 트였으면서 최후에는 참가자로 게임에 참가한다. 프런트맨에게 게임을 맡기며 그는 게임의 참가 목적을 '재미'라고 말한다. 그의 말을 통해서 오일남 자신은 오랫동안 이 게임을 운영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즉 수많은 게임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아비규환을 보는 재미로 즐겼던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무대는 게임이라는 지옥과 삶이라는 지옥 두 가지 무대로 구성된다. 삶의 지옥에서 도망쳐 게임으로 들어온 참가자들은 게임에서의 죽음을 피해 다시 삶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삶에서도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다시 게임이라는 지옥으로 들어간다. 자발적으로 말이다.
평생을 이겨온 오일남 같은 사내에게는 재미로 보이는 세상은 게임 참가자들에게는 지옥이었고, 456억이라는 큰돈을 기대하며 협력하고, 배신하고, 살육하고, 도망치기를 반복한다. 세상이나 게임이나 아무런 차이점이 없었다.
오일남이 재미를 위해 게임에 참여한 모습을 보니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구라는 지옥에 갇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끝없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지적 생명체라고는 작은 구슬 안에 갇혀 살고 있는 인류 80억 명.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살리며 결국은 돼지 저금통 안에 있는 황금빛 5만 원 지폐를 갖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에겐 게임 상금으로 주는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망가진 인생을 회복할 유일한 돈. 유일한 희망.
나는 종종 이 모든 세상이 다 거짓이기를 바라곤 한다. 그저 환상처럼 만들어졌기를 바라며, 한 편으로는 자발적으로 게임에 참가한 오일남이 나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살곤 한다. 너무나도 사는 게 지루해진 나머지, 지구라는 지옥으로 자발적으로 내려와 게임을 즐기고 있는 거라면 어떨까 하면서.
문득 나는 오일남의 과거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 이름처럼 1등으로 살아온 인생이라면 그에게 있어서 세상은 너무 쉬워서 재미없는 그런 곳이었을까. 한 번도 을의 위치에 놓인 적 없는 스릴을 느끼기 위해 지옥도 같은 오징어 게임에 들어왔던 걸까.
하지만 그는 설령 오징어 게임에 들어왔을지라도 죽지는 않았다. 그저 죽은 척 총소리만 났을 뿐. 규칙을 따르며 생사를 넘나드는 게임을 한 것 같았지만 여전히 게임 밖의 권력을 가지고 게임 속에 있었던 것뿐이다. 모두가 자신의 짝을 죽여야만 한다는 게임에서 무적 치트키를 쓰고 죽은 척한 셈이다.
물론 그가 탈락한 구글 뺏기 게임은 오일남이 주인공 성기훈에게 일부러 져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어찌 보면 성기훈이 구글 가지고 거짓말로 속이는 모습을 보면서, 깨끗한 척했던, 남을 아끼는 척했던 성기훈 역시 똑같은 놈이라며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재미를 모두 본 그는 죽음을 위장해 퇴장하고, 성기훈의 마지막 모험을 구경하는 재미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패배마저도 자신이 원했던 형태로 했을지도 모른다.
적수가 없는 삶은 오일남과 같은 삶일까. 언제나 아군이 등장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게임을 이끌어갈 수 있고, 언제나 승리하다 보니 스릴을 찾기 위해 지옥에도 가보는 삶.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 가지고 싶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와 어린 시절 놀이와 추억. 그래서 그는 구글 뺏기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자네와 함께 놀아서 참 재밌었다."라고. 참으로 공허하고 아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