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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부러움

2024. 8. 2.

by 한상훈
ソエジマトシキ / Live & Recording 2024 / Neo-Soul Guitar powered by SHURE


내가 가장 처음 좋아했던 NBA 선수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a.k.a 티맥)였다. 한 때는 그가 동부를 대표하는 슈퍼 스타였기에 동부의 티맥, 서부에 코비 브라이언트를 줄여 동티맥, 서코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티맥의 전성기는 비교적 짧게 끝났다. 퍼스트 스탭만으로도 수비수를 부수던 돌파력은 떨어지고, 몸은 무거워졌고, 이도저도 아닌 슈터로 정점의 자리에서 너무도 빨리 내려왔다.


KoCiHL_9wD_4cysJkI4w7K1CVSSEdMo4zLE53gDNI0-hvcyOuIGn9wlQPOZu7lVIJYyV10KOmuNl3mOdEs3Rvg.webp 올랜도 매직 시절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슈퍼스타는 대부분 그렇다. 린새니티를 만들었던 제레미 린도 몇 경기에서 폭발적으로 득점을 하며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인 것처럼 보였지만 그 화력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다. NBA에서 드래프트 10위 안으로 들어온 선수들 중에도, 아니 심지어 1 픽이어도 실패하는 경우는 계속 있어왔다. 한 때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창창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사람들도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위치에 있다.




고등학생이 흔히 하는 착각은 대학교가 인생에서 아주 지대한 영향과 타이틀을 주는 것처럼 오판하곤 한다. 사실 그렇지 않은대도 말이다. 많은 이들이 좋은 학교를 가고 나서도 방황하고, 도리어 오랫동안 고시공부를 하다 합격을 하지 못해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한 때는 촉망받는 인재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재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도 어느 날, 어떤 순간을 지나고 나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곤 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부러워하지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부러워하는 사람도 현재에만 부러움에 속할 뿐이다. 영원한 부러움도 없고, 오히려 부귀와 영광, 사람들의 기대와 응원이 때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을 파괴하기도 한다. 오히려 멍청하리만치 정점의 자리에 올라갔음에도 원칙을 지키고, 기본을 지키는 고지식한 이들이 그 정점에서 아주 오랫동안 머물며,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내려온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보고 그 분야의 황제라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느끼는 부러움은 때로는 열등감으로 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동기부여로 발현되기도 한다. 부러움을 느낀다는 건, 멋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당사자에게 멋을 느끼기 때문에 그가 부럽고, 나도 가지고 싶은 무언가가 그 사람에게 있기 때문에 부럽다. 즉 부러움은 내면의 욕망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어찌 보면 내 영혼이 원하는 가장 순수한 갈증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 욕망이 실현된 사람들의 삶을 보면 내가 꿈꾸는 것보다는 막막한 삶을 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부러움에는 수많은 필터가 끼워져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진정한 부러움이 내 안에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스포츠 스타들은 단순히 경기에서 승리하고, 엄청난 돈을 벌며 인기를 끄는 것만이 그들을 부러워할 모든 이유는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받는 엄청난 애정으로 인해서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할 사람들도 쉽게 만나 연애하기도 하고, 사생활은 극도로 문란하거나, 극도로 사치스러울 수 있다. 스포츠 스타가 그렇다면 사업가들은 어떨까? 해커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남들에게 보이는 부러운 포인트도 있겠지만 시장의 안 쪽의 사람들만 누리는 부러움이 있는 분야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부러움은 깊이가 있어서 알면 알 수록 빠져들게 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두고 왔다는 원피스'처럼 안 쪽 세상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묘수들도 심심찮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안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세상을 아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천문을 다루는 사람들은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두운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분야로 가던 그 안에는 겉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그 안의 거대한 보물이 있고, 그 거대한 보물을 아는 사람들은 그 보물을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향해 미련해 보이는 짓도 최선을 다한다. 남들 눈에는 그것이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땅을 파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땅 깊은 곳에 보물이 묻어져 있다면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곡괭이 질을 하고, 곡괭이로 안되면 굴삭기라도 끌고 와서 판다. 그것이 숨은 세상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선명한 세상을 사는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보물을 쫒는 사람들의 삶을 알지 못하고, 관심도 없을 것이다. 재밌게도 스포트라이트 속에 사는 이들은 귀족의 권력을 가진 것처럼 살겠지만, 그리고 진실을 모르는 이들은 이들의 귀족 같은 삶을 동경하겠지만 그것은 눈에 뻔히 보이는 세상만을 보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도박판의 격언을 기억해야 한다. 이 판에서 호구를 찾아야 한다. 호구를 찾지 못한다면 내가 호구인 것이다. 이 세상이라고 도박판과 다를 바 있을까. 이 세상에서 호구처럼 사는 이들이 누구인가. 저들은 자발적으로 호구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내가 호구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체스판에서 내가 어떤 기물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눈앞에 적을 두려워하고, 멀리서 오는 공포는 볼 수 없다. 그렇게 세상은 뻔한 부러움으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보물을 찾는 이들은 자신의 보물지도를 숨기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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