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4.
20여 편의 강의 촬영을 모두 마쳤다. 매일 적어도 4시간 정도 촬영에 시간을 쏟았던 것 같다. 영상은 그렇다. 5분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여줄 내용을 정리하고, 표현을 가다듬고,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제거하고, 자막을 입히고, 렌더링 하고, 업로드하고. 이 모든 과정이 다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게 일을 마무리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나 뿌듯함이 크지 않은 편이다. 40~60시간 가까이 사용해 영상을 모두 촬영했지만 막상 마무리를 했을 때는 그저 다음 할 일이 떠올랐다. 나 같은 사람들은 목표 달성을 할 때마다 오히려 우울해지곤 한다. 목적지에 서둘러 도착해도 그곳엔 아무도 없는 그런 기분이다.
대신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과정 안에서도 재미를 찾고 그러다 보니 마무리를 하고 나면 이상한 감정이 들곤 한다. 시원 섭섭한 마음도 아니고, 오히려 한 번 더해봐야 할까 하는 이상한 기분 말이다. 이번 책도 그렇다. 딱히 책을 쓸 생각은 많이 없었다. 그러다 작년 초쯤 편집자님의 연락을 받아 다시 한번 책을 써보게 됐다. 책을 쓸 때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데 들어간 에너지에 비하면 얻는 것은 감성적인 것에 가깝다.
흔히들 작가가 되면 많은 게 바뀔 것을 기대하지만 내 경험상 그렇진 않았다. 물론 서점에 내 책이 올라와 사람들에게 팔리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뿌듯한 일이지만 소소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책을 쓰는 과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출간한 알고리즘 책은 더욱 그렇다. 지식을 전달하는 책은 전문서적으로, 내용의 검수 과정이나 이후 강의까지 한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어찌 보면 힘든 길이고, 수익은 초라한 길이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가를 전업으로 하지 않고, 부업으로 하곤 하나보다.
종종 나에게 사람들이 책으로 버는 돈이 꽤 되는지 묻곤 한다. 들어간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다지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는 아니다. 책은 씨를 뿌리는 것처럼 평판과 명성에 가깝지 그것 자체가 돈이 되는 경우는 판매량이 일정 수준을 넘겨야만 가능하다.
어쨌든 그렇게 시원한 마음으로 하나의 일을 마치고 나니 여전히 할 일은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친 마음으로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멍하니 쉬었다. 할 일이 너무도 많았다. 매일매일이 말이다.
에너지를 찾게 된 것은 배고픔 때문이었다. 배가 고파 근처 마트라도 가서 간단하게 뭐라도 사 와야 할 것 같았다. 밖은 저녁노을이 질 무렵이었지만 무더운 여름날 그 자체였다. 마트에 도착해 한참을 서서 밖에 진열된 과자들을 보았다. '몇 봉지씩 묶어서 파는 포카칩이 고작 3600원이라고?' '편의점에서 종종 포카칩을 사 먹을 때면 작은 거 하나에도 1700원 정도는 했던 것 같은데...' 하는 생각으로 멍하니 마트의 과자들은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막상 과자는 사지 않았다. 마트에 들어가 평상시엔 사지 않던 바나나, 프로틴 바 정도를 사고 나왔다. 집에 와서 바나나와 프로틴 바를 먹으니 입맛이 돌았다. 입이 달아서 라면이 당겼다. 그렇게 허겁지겁 먹고 나니 더운 몸을 샤워하며 식히기로 했다. 처음엔 뜨거운 물로, 그러고 나서는 차가운 물로 정신을 차렸다. 화장실의 물기를 청소하고, 밀린 방 청소와 정리를 했다.
하루는 그렇게 다 지나가버렸다. 방송을 위해서 카메라 배치도 조정하면서 이것저것 치우다 보니 4시간 가까이 치워야 했다. 유튜브로 국제 정세와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청소하다 보니 4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평상시에 치우던 곳은 깨끗했지만 배치를 바꾸니 숨은 먼지가 많았다. 먼지를 모조리 다 없애버리고 나서야 작은 평화가 찾아왔다.
도대체 몇 개의 일을 마친 것일까 잘 모르겠다. 지난 7월은 그랬다. 아니 지난 몇 년 동안 계속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쉽지 않은 상황들을 해결해야 했는데, 재밌게도 그 발버둥 속에서 아주 조금씩 더 나은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것 같았다. 마치 봄철의 나뭇잎 사이에 붙은 꽃 잎을 모두 떨쳐내듯 말이다. 과거의 어린 모습을 다 찢어내고, 버리고 있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잠깐 책을 보면서 책에 틱꽝득이라는 스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평화를 위해 소신공양을 한 분이셨다. 화염 속에서 비명 소리도 없이, 가부좌로 생을 마감한 분이셨다.
이 분을 오랫동안 생각해 보았다. 이 분에게는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어떤 마음 가짐으로 자신의 몸을 태울 수 있었을까. 인간의 모든 나약함에서 자유를 찾은 분들은 이처럼 고요하게 불길 속에서도 뜻을 전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게 8월의 첫 번째 주도 지나간다. 이제 올해도 4달 정도 남았구나. 나의 어리고 부족한 모습을 떨쳐내기에는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문득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