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여정

더운 비

2024. 8. 5.

by 한상훈

무덥다.


더위를 피할 곳이 없는 것만 같다.


17일간 이어진 폭염은 한국을 그 어느 때보다도 후덥지근하게. 진을 한 줌 한 줌 빼앗아 가는 것 같았다.


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에 가득 머금은 더위가 조금은 내려온 것일까. 아니면 이 뜨거운 열기에 못 이겨 비로 방울져 떨어지는 것일까.






오솔길 - 정재형



집으로 돌아오니 선선한 에어컨 바람이 반갑게 느껴졌다. 뜨거운 열기에 있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뜨거움 속에서 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하나의 껍데기를 깨고 있다. 껍데기가 아스라 지며 껍질 속에는 연약한 본모습이 보인다. 다시 또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무척이나 바보 같은 나날을 보낸다. 서울을 가득 채운 열기 속에서.


부족함을 매일 깨닫고 있다. 나름 잘 살아왔던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은 빠르게 무너지고, 빠르게 뜨거워져 간다. 밖에 있다간 실신할지도 모르겠다. 남을 구해주고 싶었는데 턱끝까지 찬 물속에서 숨을 고르기 바쁘다. 에라 모르겠다. 조금의 숨이라도 채워두고 물속으로 잠수한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세상의 열기를 피하기 위해. 숨을 참고 헤엄을 친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옆에 보여도 상관없다. 나도 숨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니.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조금은 선선한 날이 찾아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그 선선한 평화로움이 숨 막히는 세상의 시간 속에서 조금은 천천히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어서 올 추위가 너무 급하지 않게.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서랍을 가득 채운 일기장이 되었다. 먼지가 가득한 오래된 방에는 잊힌 일기장이 널브러져 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던가, 언제 이렇게 뜨거워졌던 건가 하며.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고, 선택한 삶을 머릿속으로 그려본 것과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달랐다. 이 열기를 오랫동안 기억하기를. 이 열기를 기억하며 다가올 다음 여름을 준비하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두 번째 출간을 앞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