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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재앙

2024. 8. 6.

by 한상훈
1200px-Luca_Giordano_-_The_Fall_of_the_Rebel_Angels_-_Google_Art_Project.jpg Saint Michael in The Fall of the Rebel Angels by Luca Giordano


아무리 큰 문제가 있더라도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나타나면 사소해지기 마련이다. 종이에 베여 손끝에 핏방울이 맺히면 손끝에 온 신경이 쓰이곤 하지만 다른 곳에 더 큰 상처가 생기면 이내 관심은 바뀌게 된다. 삶도 그렇다. 삶이 힘들고 피폐하고 막막한 것 같을 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세상을 뒤덮는다면 내가 하던 고민들은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구나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작은 고민을 다 뒤덮을만한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죽음 또는 전쟁이 있을 것이다. 당장 이 나라에 전쟁이 발발해서 서울 대부분이 불에 타고 빌딩이 폭파되고, 나의 집과 터전이 무너진다면 과거의 고민은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어디에 취직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은 전쟁을 위해 소집이 될 것이고, 몇몇은 총탄에, 몇몇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미사일과 폭탄에 흔적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이 나라가 그렇게까지 안전하고, 오랫동안 터를 잡을 만한 곳인가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이다. 중동은 해결책이 없이 또다시 전쟁의 포화로 가득 차고 있다. 여러 뉴스 매체에서는 김정은이 두려움으로 밤잠을 설치며 벌써부터 후계자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블랙 요원들의 정체가 발각되어 이미 많은 요원들이 조용히 먼 이북 땅에서 숨을 거뒀을지도 모른다.


바로 어제 블랙 먼데이라고 부를 만큼 큰 폭락이 시장에 찾아왔다. 미국의 가계의 카드 연체율은 2012년도 이후 최대 수치인 3.1%를 넘겼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인 샌프란시스코의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 이미 작년에 35%를 넘겼다. 2016년 6500만 달러로 거래된 빌딩이 670만 달러에 매각되는 일이 펼쳐지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조용히 침몰하고 있는 소리가 태평양을 건너 들려온다. 이 포탄 소리가 세상 사람들에겐 들리지 않는 것일까.


옆집이 폭격에 맞아 박살이 났는데도 평화롭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은 정신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옆집이 폭격당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귀를 막고 있으니 들을 수 없고, 눈을 감고 있으니 볼 수가 없다. 포격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린다고 한다면 전선이 밀려 내려오고 있다는 걸 눈치채야 하겠지만, 세상에 가득한 소음에 전선에서 들리는 포격 소리가 아닌 청각을 마비시킬 만큼 키운 TV소리에 포격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한국은 불과 30년도 안된 시점에 IMF 구제금융을 받아 대기업들이 추풍낙엽처럼 바스러지고, 애지중지 모은 금반지까지 팔아가며 밑바닥을 경험한 국가이다. 성경에도 이러한 표현이 있다. 마지막 날이 아무리 가까이 와도 사람들은 결혼을 하기도 하고, 축제를 벌이기도 한다. 마지막을 인지할 수 없기에 끝의 끝까지 와도 일상대로 산다. 내일을 꿈꾸고, 오늘이 영원할 것처럼 행복을 느낀다.


큰 문제가 덮치면 작은 문제는 무가치하게 느껴질 것이다. 포격 소리가 들려온다. 이것이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포격 소리일까. 지금이라도 도망가라는 마지막 경고의 소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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