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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13. 2024

죄인 의식

2024. 9. 13.

Emile Mosseri - Infinite Love / Old Dolio's Plan

유대 민족은 유구한 역사동안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식해야 했다. 그래야만 상황이 합리화될 수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것도 합리화할 수 있었고, 나라를 뺏은 것도 합리화할 수 있었다. 모든 게 합리화되기 위해선 종교가 필요했다.


출애굽기를 보면 참 웃기는 부분이 많다. 야훼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약속한다. 그렇게 간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그렇지 않다. 젖과 꿀이 흘렀던 땅인가.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 왕조는 얼마나 유지됐는가. 고작 몇 명의 왕이 세대를 이어가지도 못하고, 북이스라엘 - 남유다로 갈라선다. 그리고 국가가 유지된 건 얼마나 되나. 그러고 나서 모든 유대민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로마와 오스만 제국이 땅을 차지하고, 수백 년이나 지나서야 영국을 통해 땅을 약속받는다. 


영국은 땅을 팔레스타인 인들과 유대인 모두에게 약속했다. 천하의 양아치 민족답게 전 세계 모든 분쟁에 안 끼는 곳이 없는 깡패 민족 영국. 그들의 약속을 받아 1948년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는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인들이 대한민국을 빼앗는 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 고려도 우리나라였으니 하면서 땅을 나눠줄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러나 유대 민족에게는 이 땅이 약속의 땅이고, 그들의 신념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렇기에 땅을 UN에서 정해서 이스라엘에게 돌려주라고 하고 있고, 그 뒤에는 강력한 자본을 바탕으로 로비 활동을 진행한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좋아할 만한 방식으로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 있다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수백 년간 살아온 사람들과의 전쟁은 누구의 잘못인가. 


유대인의 죄인 의식은 그들의 사고관 뿌리 깊게 남아있고, 기독교계 전체에도 뿌리 깊게 남아있다. 우리가 벌을 받는다. 왜? 우리 죄 때문에. 우리 죄는 왜 생겼는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성이 생겼다. 좆같은 소리다. 아담은 선악과를 자신의 첫 번째 아이가 생기기도 전에 먹었고, 그 결과로 인류 전체는 영원한 죄의 굴레로 들어간다는 게 창세기의 설명이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사랑의 하나님이자 전지한 하나님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사랑하는 자식이 자손 대대로 사망의 늪에 허덕이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이 세계를 유지한다? 그 탓은 오로지 아이인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기독교 사상과 유대 민족에게는 이 개 같은 논리가 진리가 되어야 했다. 왜냐면 그들이 죄인이어야 그들이 받는 핍박이 정당화되고, 우리가 종교적 순수성을 되찾으면 복을 받아 이 핍박에서 자유를 얻는다 말한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이 받아온 모든 핍박을 죄인 의식에서 출발한 합리화를 하며, 그들이 가진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정신적 자위에 사용하는 요소가 된다. 하나님이 선택했기에 더 많은 핍박을 받고, 더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선택받은 민족이 사랑하지는 않고 돈과 권력으로 어떻게든 땅을 획득하려고 로비 활동을 하며, 프로파간다를 만들어가는 민족이라니. 


죄인 의식은 참 인간에게 모든 것을 합리화할 방법이 된다. 내가 지금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네가 죄를 지어서 그래. 네가 지금 좋은 상황에 놓여있어? 그건 네가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준거야. 모든 게 신의 기준으로 합리화를 하면 그 안에 어떤 발전이 있겠는가. 오롯이 죄와 죄가 아닌 것이 기준이 된 삶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죄의 기준에 대해서 고민하며 사는가? 애초에 성경을 1독이라도 해본 가톨릭, 기독교인의 숫자를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얕은 수준의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죄 때문에 지옥에 간다고 협박을 해도 그 기준이 되는 성경 말씀도 모르는 인간들이 신을 따른다고 설치고 있고, 성경의 논리에는 모순이 가득하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기독교 논리가 서구 사회와 현대 사회의 근간이 되었음을 부정한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성경을 깊게 공부하는 이들도 없고, 성경을 깊게 공부하고서 모순을 말하는 이들은 더욱 적은 작금의 시대에. 


이것에 대해 니체를 비롯한 사상가들이 해석한 내용도 곱씹어볼 만하다. 아무런 지성 없이 종교를 따르던 시대에서 계몽주의로 넘어가며 사람들의 가치관의 근간이 된 "신"이 죽어버렸으니. 그 신이 사라진 사람은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가. 내 마음속에서도 신은 죽어있다. 살아야 할 이유였던 신도 죽었으니 나도 마찬가지 상황이라 할 수 있겠지. 기준을 잃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게 알을 깨고 새로운 세상으로 간다. 알의 세계가 깨어지고, 그 밖의 차가운 공기가 마주하니 때로는 알 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정치 종교적 어젠다는 인류사와 역사적 배경 그리고 그들을 통솔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모세의 가르침이 죄인 의식과 직결된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뺑뺑이 돌리고 있는데, 이를 합당화할 방법은 "너희들이 잘못해서"라고 해야 한다. "내가 길을 못 찾고 무능해서"도 안되고, "신이 없어서"도 안된다. 어떤 조직이든 그 정도 상황이 된다면 진작 쿠데타가 일어나 지도자의 목숨을 노리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는 타락하고, 음란한 민족이라는 죄인의식을 뿌리 깊게 심어주어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에 해당하는 40년 동안을 광야에서 보낸 것이다. 


"너는 죄인이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세상에 해당 명제를 벗어나는 예시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종교인들은 진리를 합당화하기 위한 새로운 헛소리를 창조한다.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인간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검증하지 못한 내용을 성경이라는 기준을 두고 재창조한다. 그래서 재창조하는 방식에 따라 교파와 교단이 나뉘고, 그중에서는 자신이 예수라는 미친 사기꾼들이 대한민국에만 300명쯤 있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의식을 가르치는 곳이 있다. 한국 민족이 신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이거 완전히 어디서 본 패턴과 똑같지 않은가. 어떻게 된 게 사람들 속여서 이득을 보는 놈들은 창의성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같은 패턴에 속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지금 한국에서 유행하는 사업 아이템이 하나 있다. 바로 무당이다. 나라가 망조가 들면 온갖 잡신들이 유행하고, 사람들이 절대적인 존재에게 의지한다고 하던데 바로 그 상황이 펼쳐진다. 사업한다는 사람들도 정치인도 심지어 종교인도 고객이 된다. 그들이 쓰는 돈 중 몇 퍼센트나 세금으로, 화이트 머니로 올라올까. 결국은 블랙 머니로 블랙 머니의 경로를 타고 돌아다니게 된다. 


무당들의 메커니즘은 죄인 의식과 크게 다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굿이나 부적을 쓰라고 하고 돈을 번다. 그리고 효과가 없다면 "네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안 됐다."라는 패턴으로 응대한다. 증명할 방법도 없고, 자신의 잘못도 없다. 언제나 구매자를 탓한다. 무당 고객들만 그런가? 기독교는 다른가? 과거에 신권 정치하던 시절엔 다른가? 너희들이 기도 안 해서 가뭄이 왔어. 너희들이 죄를 지어서 신이 노했어. 왕인 내가 국정 운영을 망하게 한 게 아니라 백성인 너희들 탓이야. 얼마나 편리한 프로파간다인가. 그런데 그것을 자발적으로 전파하고 목숨을 걸고 전하는 이들이 있으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나는 선교사를 꿈꿀 정도로 깊게 기독교를 공부했으나 이 종교의 맹점은 그들도 무엇이 진리라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종파과 종교를 돌면서도 하나로 정리되지도 않은 교리를 가지고 자신들이 정답이라고 단정하는 인간들이 산처럼 쌓여있다는 것이다. 그 교리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과 그 안에 발생한 이해관계. 거기에서 생긴 오역들과 편집된 성경들까지. 어디서부터 진짜라고 믿겠는가. 내가 믿는 게 정답이라면 같은 신을 섬긴다는 다른 놈들은 다 이단이고, 다 틀렸다고 어떻게 단정하는가. 


내가 보기에 성경에서 이제 이뤄질 예언은 아마겟돈뿐이라 생각한다. 5차 중동 전쟁까지 오면서 그 많은 피를 흘리고, 그것에 군수사업으로 천문학적 돈이 온갖 금고에 철철 넘쳐흘러 들어간다. 이야 축제다 축제. 전쟁이 아니라 축제가 열렸으니 얼마나 즐겁겠는가. 싸움 구경이 재밌다더니 싸움을 하면서 나에게 돈까지 쥐어주네. 둘을 더 싸우게 하자. 계속 싸우게 하자. 영원히 싸우게 하자. 우리는 영원히 배부르게 이 상황을 즐기자. 


물론 나는 이렇게 교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불가지론자가 되었다. 인간이 진리에 대해서 알 방법이 없다. 성경의 교리가 도저히 납득될 수도 없고, 전지와 전능의 모순성에 대해서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내가 다 틀렸을 수 있다. 인류가 쌓은 과학 기술은 고작 뉴턴 물리학 이후 300년 남짓동안 빠르게 올라온 것뿐인데. 우리는 여전히 우주의 티끌보다도 작은 곳에서 발버둥 치면서 사는 종족인데. 도대체 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싶겠으나. 이것은 아니다. 죄인 의식은 간편하다. 사람들을 통제하고, 삶의 기준을 만들어주고, 원하는 대로 조종하기에 간편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이 가장 간절한 종교의 전파자였으니 나는 그것이 신이라면 믿지 않겠다. 바알세불을 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전혀 다르지 않다. 


신약의 대부분은 사도 바울을 통해 만들어졌고,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코빼기도 못 본 사람이다. 그가 쓴 편지로 교리가 완성됐다. 그가 신묘한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고, 그가 스스로 사도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그렇기에 나는 사도 바울과 그가 전한 사복음서에 없는 주장들도 신뢰하지 않지만 그는 유의미한 말을 하곤 했다. "믿는 사람은 스스로 그것을 시험해보아야 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게 무엇인지 시험해 보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사도 바울 말처럼 믿는 자들은 독을 마셔도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독을 마셔봐라. 그렇게 목숨을 잃은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이러면 비유적 표현이다 하면서 멋대로 어떤 건 비유고 어떤 건 진리라 말하는 이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이렇게 성경은 간편하게 성경을 따르는 인간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쓰인다. 그리고 사람들을 죄인이라 설득하며 족쇄를 채운다. 


나는 성경에서 인생을 출발했지만 성경의 족쇄를 끊어버린 것 같다. 죄인 의식도 없다. 죄신 의식 따지지 말고 예수님 제자라면 한 명이라도 사람을 더 살리는 인생을 살아라.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곳에 검은돈을 불어넣어주지 말고, 한 명이라도 살리는 길에 서서 세상의 빛의 역할을 한다면 그것이 종교와 무관하게 옳은 길이라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내가 따르는 신도 그렇다. 내가 믿는 신의 모습은 사람들이 가르쳐준 신이 아닐 것이고, 만약 신이 있고, 그 신이 선한 신이라면 이딴 교리가 아닌 열매를 맺는 진짜들을 원할 것이다. 나는 그런 진짜로 살고 싶고, 진정 신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인생을 살면서 한 두 명을 구제하는 게 아니라 수십, 수백, 수천. 흑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손이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옳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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