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4.
적진에 숨어드는 깊은 땅굴을 파본 적이 있는가. 머리 위로는 적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그들의 말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어두컴컴한 땅굴 속 자욱한 먼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땅을 파내려 간다. 언제 들킬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적들의 심장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어떤 모습일까. 그 땅굴 끝내 열릴 구멍에는 어떤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까.
에이 웃기는 소리다. 요즘 같은 시대에 땅굴이 어디에 있을까. 70~80년대 북한군도 아니고 말이다. 절대 절대 그런 땅굴은 없겠지. 절대 절대 심장부를 향하는 땅굴은 결단코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런 땅굴이 있고, 그것을 파내려 가는 이들이 있다면 어떨까. 한국을 노리는 적이라면 그 땅굴은 물리적 땅굴이 아닌 시스템 내부를 꿰뚫는 땅굴. 커널까지 내려가 루트 권한을 뺏어내고 루트 권한을 바탕으로 모든 걸 모니터링하면 게임 끝 아니겠는가. 그보다 쉬운 감청, 도청, 감시가 어디에 있겠으며 얼마나 방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될까.
사람들이 간과하는 한 가지는 세상에는 힘의 균형이 있다는 점과 그 힘의 균형에서 2가지 이상을 확보하는 것이 모든 권력자들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자본, 권력, 정보. 자본은 금융 자산을 흔히 이야기하고, 현금성 자본과 수익성 자본이 있다. 권력은 어떨까. 크게 삼권분립에 해당하는 행정, 사법, 입법의 권력이다. 이 3가지 힘을 바탕으로 자본을 견제할 수 있고, 어떤 자산가의 목줄도 죌 수 있다. 정보는 어떨까. 정보 자체는 권력이 아니지만 권력을 가진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들이 정보에 담겨있다. 그렇기에 자산가는 정보를 바탕으로 권력자와 싸움을 하고, 권력자는 정보가 세지 않도록 하면서 자본가를 이용해 수익을 얻는다.
이 역학 관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첫 번째로 자본을 한국이 아닌 곳에 머물게 하면서 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도록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자본가는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추적 불가능한 비자금을 만드는데 힘쓴다. 두 번째로 정보가 없다면 정보를 만들어버린다. 상대방의 약점과 빈틈, 논란이 될 정보를 창출한다. 마지막으로 이이제이로 다른 권력자를 통해 나를 향하는 칼날의 방향을 돌린다. 권력의 분열과 대립이 선명할수록 자본가는 그 안에서 얻어갈 것이 많다.
역사적으로 권력을 심판하는 세력은 기자를 비롯한 언론사와 그 언론사에서 출발한 여론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언론사에 떠돌아다니는 정보는 저급 정보에 준한다. 많은 사람들의 입김과 의사가 반영된 정보는 힘을 얻거나 잃는데, 그 어떤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정보는 그 자체로 칼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녹취록, 계좌 기록, 만난 흔적과 향응의 기록들은 권력자의 아킬레스건을 끊어버릴 칼이 될 수 있다. 그 안에 어떤 편집도 없는 날 것이 무한한 인터넷 세계에 폭로되는 순간이라면 강대한 권력도 한순간에 추락한다.
정보를 다루는 이들은 이 사실을 알기에 자신들이 표적이 되는 것을 도리어 두려워한다. 이들은 정보를 취급하지만 그것을 수익화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동시에 자신이 노출되면 그 강대한 권력이 나를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보를 다루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쥐 죽은 듯 숨어 산다. 계속해서 모니터링하면서 정보를 창고에 쌓아두고, 그 창고를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낡은 시골 창고에 숨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그 낡은 창고를 찾아내겠는가.
아마도 낡은 창고도 땅굴은 없을 것이다. 철옹성 같은 시스템에 어디 감히 그런 일들이 펼쳐지겠는가. 하지만 배신자를 찾고자 한다면 먼저 배신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만 반복된 패턴 속에서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다. 모든 행동은 흔적을 남기고 작은 흔적에서 시작한 증거는 연결을 거듭하며 하나의 결과로 향한다. 배신자였구나. 그가 만든 땅굴이 이곳에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