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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15. 2024

쪽팔림

2024. 9. 15.

나는 쥐새끼 같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주로 어린 시절부터 개무시를 당하며 큰다. 무시의 종류도 다양하다. 얼굴이 이상해서 무시당한다. 가난해서 무시당한다. 멍청해서 무시당한다. 몸이 약해서 무시당한다. 내가 무시당할 이유가 없는데 무시를 당한다면 오히려 나으려나. 그러나 내가 정말 약점이 있고, 그 약점을 가지고 공격을 받으면 그 고통은 크고 아프다. 정말 찢어질 듯 아파 때로는 자기 자신을 찢고 싶을 만큼 아프기도 하다.


무시하는 이들은 나의 상황과 환경을 봐주지 않는다. 오히려 나의 새로운 약점이 나타나면 그들에게는 먹잇감이 되고, 맛있는 간식거리가 된다.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짝사랑하는 상대 앞에서 쪽팔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 그 좌절감은 어떨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당한 괴롭힘보다 더 클 것이다. 잘 보이고 싶은 상대 앞에서 내 가장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니. 참으로 창피하고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이 쪽팔림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서른 살 양악 수술을 하기 전까지 주걱턱으로 살아왔다. 그때까지 이것을 가지고 놀리거나 웃음거리로 만든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새본 적은 없겠지만 정말 많은 이들이 숨 쉬듯 모욕을 주었다. 나에게 있어서 수술은 공포보다도 자유에 가까웠다. 지긋지긋한 놀림감 중 하나에서 자유로워지는 과정이었다. 


그뿐인가. 사람들의 사악함을 생각해 보면 어린아이시절부터 나이 먹은 순간까지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다. 학창 시절에는 누가 어떤 패딩을 사 입고, 어떤 신발을 신고 다니는지. 어떤 학원을 다니고, 집은 어디 사는지. 만만한 집안에는 가해자 부모가 당당하게 피해자 부모에게도 모욕을 하는 일이 생기고, 그것을 방지하지도 못하는 무능한 교육 시스템에 분노할 힘도 없다. 


어린 시절 깡패에게 당해본 사람들은 깡패들이 준 모욕을 기억할 것이다. 내 지인은 깡패가 자신의 아버지를 가족들 앞에서 심하게 모욕하고, 구타했다. 그 결과 아버지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그는 오래된 과거임에도 그 모욕과 괴로움 속에서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이런 이들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많겠는가. 


그래서 나는 강해지지 않으려는 인간들을 보면 모욕을 경험해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쪽팔림을 경험해 봤다면 그 쪽팔림을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강해지려고 애쓴다. 학습능력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학습능력이 없는 이들은 쪽팔림을 당하고, 나와 내 가족이 모욕을 당해도 강해지려 하지 못하고 도망친다. 도망. 도망.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돼서도. 성인이 된 다음 부모가 돼서도. 계속된 도망. 그 도망치는 뒷모습을 보고 그의 아이는 세상을 배운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정말 쪽팔린 일이라 생각한다. 약점이 있어서 때로는 세상에 처맞고 피멍이 들고 찢어질듯한 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일이 나에게만 일어난 재앙인가? 아니. 세상을 원래 그렇게 좆같은 곳이다. 그걸 모르는 인간이 어디에 있나. 약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쥐어짜 내고, 놀림감으로 세워두고, 대상을 놀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모욕하는 게 인간이다. 그러면서도 죄의식을 가지지 못한다. 패드립이 숨 쉬듯 나가면서도 그것이 죄인지 모르는 게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약점을 나 자신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점에서 자유로워지지 않으려 하는 인간은 무능력하고 쪽팔린다. 정말 한심하다. 내 상황을 비관하고, 나를 괴롭히는 모든 적들을 악마화하는 것은 그 순간만 피해 가려는 방어기제에 불과하다. 세상엔 그런 인간들이 산처럼 많다. 도망간 이들의 삶을 보자. 약점을 감추기 급급한 이들의 삶을 보라. 그들이 닮고 싶은가. 아니면 약점을 이겨낸 이들의 삶이 닮고 싶은가. 나는 언제까지 괴롭힘을 당하고 모욕을 견뎌야 하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나를 괴롭히는 그들만 악마가 아니라 악마들이 곧 사람이다. 


나는 쪽팔리게 살고 싶지 않다. 멍청해서 놀림당했다면 멍청해지지 않고, 오히려 남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내 약점이 개선 불가능한 약점이라면 그 약점을 덮을만한 강점을 만들면 된다. 인간은 그렇게 자신의 한계를 뚫어낸 사람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고, 동시에 존경심을 느낀다. 악마들도 굴복할 사람이 되는 것은 내가 그들 모두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한 게 아니다. 내가 가진 약점을 극복한 인간이 되었을 때 나를 괴롭히는 악마들도 내 주변을 떠나가게 된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그저 가장 약한 놈을 괴롭히는 게 재미이기 때문이다. 계속 구석에서 울고 불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놈을 찾는 이들이기에 강해져 가는 인간을 괴롭히기보다는 가장 연약한 이들만 찾아다닌다.


그렇게 사람은 강해져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 한다. 나는 그것이 인간으로 성취할 수 있는 위대함이라 믿고 있고, 그것이 자랑스러운 인생이라 믿고 있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 당신도 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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