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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16. 2024

마지막 한 놈

2024. 9. 16.


GALL · J-Tong

희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시야를 넓혀주면 깨닫고 성장하겠지 하며 말이다. 시간과 관심을 쏟아보았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전혀 성장하지 못했다. 그저 눈높이만 높아진 게으름뱅이가 되었다. 이제야 알았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게으름은 부지런함의 반대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게으름이란 표현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미루는 것을 뜻한다. 중요한 시험을 코앞에 둔 사람이 바쁘게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부지런한 사람인가? 10년간 준비한 변호사 시험을 앞두고 아무것도 상관없는 일에 1년씩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부지런하다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묻겠지. '너 변호사 될 생각은 있는 거야?'


뼛속까지 각인된 게으름. 나는 인간에 대해 희망을 품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마지막 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희망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가진 인간에 대한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에게 항상 성공을 원한다 말했고, 부를 원했고, 자유를 원했다. 그러나 그걸 위해서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노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만 하면서.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웃곤 했다. 나는 그 비웃음이 진심이 아니길 바랐다. 어쩌면 그것이 진정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내 삶에 희망은. 그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희망은 하나씩 꺼져갔다. 어쩌면 그것이 자명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백종원의 골목식당에서도 개과천선을 한 사람은 수백 명의 신청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걸 보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준비되지 않은 왕좌에서는 쫓겨난다고 난 믿는다. 준비되지 않은 성공만큼 위험한 게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제 사람을 바꾸겠다는 말도, 그들이 하는 말도 믿지 못하게 됐다. 오롯이 그들의 결과와 발자취만을 검증하고, 그 검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생기면 단칼에 처내야 함을 배웠다. 기회를 주고, 용서를 하면 변화할 것이라는 이상주의가 나에게 끼친 피해를 계수해 보면 참담하기 그지없다. 그래. 어찌 보면 냉소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사람을 가치절하하고, 사람을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믿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바뀌지 않았구나. 그들은 정말 한치의 성장도 못했구나. 스스로 말한 것처럼.


생각의 한계. 나는 그들이 그 한계를 깨기를 원했다. 자신에게 제공된 자료와 기회를 30분이 됐던 1시간이 됐던. 모르는 단어를 하나씩 공부해 보고,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 방법은 없을까. 위험한 요소는 무엇이 있고, 기회는 무엇이 있는지. SWOT 분석이라도 해서 성장하기를 꿈꿨다. 하지만 정말 한심하게도. 돼지 앞의 진주처럼. 진주를 가져다주어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기에 단 30분도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빅 4 회계법인 임원들도 30분은 써서 보는 자료를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은 뭐라도 아는 것처럼. 그 안에서 찾아낼 보물은 다 찾은 것처럼 행동한다.


정말 돼지와 다를 바 없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하나의 희망이 사라진 것 같다. 인간을 돼지로 비유하기 싫지만 진주를 가져다주어도, 다이아몬드가 앞에 있어도 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완벽하게 가공된 보석뿐이다. 모든 보석은 상품화되기 전에 원석이다. 그 원석을 어떻게 깎고, 다듬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지만 보석의 보자도 모르는 인간들은 그것을 길바닥에 널릴 돌멩이로 취급하는 것이다.


귀중한 것은 하찮게 여기고. 하찮은 것을 귀중하게 여기니. 그들의 미래가 내 눈에 그려진다. 아니. 내가 보아온 그들의 삶은 한치의 변화도 없이. 딱 그 정도로.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게으름뱅이 다운 삶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자랑할 만한 것도 만들지 못했고, 약점을 보강하지도 못했고, 경력을 발전시키지도 못했고, 모아둔 돈도 없고, 쌓아둔 전문성도 없다. 도대체 뭘 하면서 보낸 것인가.


마지막 희망의 대상마저 사라졌으니 오히려 모든 게 선명해진 것 같다. 기회는 1번이면 족했다. 기회를 실패하는 경우라면 뼈저리게 반성하는 이들이라면 2번이라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이상은 의미가 없다. 인간의 진면목은 최악의 상황에서 발현되기도 하지만 꾸준히 지속적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꾸준한 게으름을 기적적으로 바꾸는 사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경우의 수가 1/10000 정도가 된다면 그 확률은 무시하고 살아가겠다.


마지막 한 놈아. 이 글을 혹시라도 보고 있다면 안타깝게도 너에게 줄 기회는 끝났다. 나에게 큰 가르침을 주어 고맙다. 너를 통해 나는 게으른 인간의 말로에 대해서 확신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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