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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Sep 17. 2024

백성

2024. 9. 17.



눈을 찌르는 바늘


백성 민(民)이라는 한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바로 한쪽 눈을 바늘로 찔러 노비로 부림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백성이라 불렀다.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눈을 찔러 반항할 의지도 똑바로 행동할 수도 없게 만든다. 한쪽 눈을 잃은 사람은 어떤 공포 속에 살아야 할까? 반항한다면 남은 한쪽 눈마저 잃어버린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한다. 맹인으로 사는 삶은 현대화된 지금의 시대에서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게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에 맹인은 어떻게 살겠는가. 권력의 힘으로 사람들의 신체 일부를 빼앗는 게 당연했다. 인류 역사상 99%는 그런 시절이었다.


백성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낙인을 찍거나 신체 일부를 불구로 만드는 것은 유구한 전통이었다. 또한 승자라 불리는 역사의 패자들이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찬란한 문화유산이라고? 눈을 찔려 피눈물을 흘리며 강제 노동으로 살아온 수백, 수천만. 아니 셀 수 없는 백성들의 핏덩이가 아니라? 


현시대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을 찔러 노예화한다. 눈을 찌른다는 것은 결과적인 표현일 뿐 실제로는 인간이 인간을 대상으로 한 통제의 방법이 눈을 찔러 실명시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상을 통제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위험하다.' 말하고, 사상을 검열하고, 사상을 주입한다. 사상을 검열하고 주입하고 통제하고 감시하는 이들이 누구인가. 하나의 생각과 관점을 고수하라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시대의 적이다. 


제이통 (J-Tong) - ‘조선 세비지’ Official Music Video


실명의 공포를 주어 노비로 인간의 삶을 통제로 끄집어내 사용하는 것처럼. 사상을 거세당한 인간은 매일 똑같은 생각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 분명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생각해 낼 수 없다. 마치 락에 걸린 것에 접근하려는 것처럼 "나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면 안 돼!" 하고 허둥지둥 도망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온전히 부순다는 것은 그것을 오히려 검증하는 일에서 발생한다. 지식을 탐구하는 자는 지식을 탐구하면서 도리어 자신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일부분을 밝히 드러내려 하는 이들은 때로는 감추고 싶은 역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어떤 것이든 깊은 진리를 마주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진리까지 만을 진리로 인정한다. 권력자에게 도전할 생각을 하기보다는 "나라님이 시키는 일은 잘해야 해." 하면서 어느 순간 왜 내가 그런 굴종을 따르고 있는지도 이유를 까먹는 것이다. '나는 왜 굴종하고 있는가?' '나는 왜 이 법을 지키고 있는가?'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뇌를 깨기 위해선 병신 같은 법을 따르고 있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통제의 시스템으로 한쪽 눈을 바친 이들은 다른 이들도 한쪽 눈을 잃기를 바란다. 양 쪽 눈으로 세상을 보고, 두려움 없이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이들을 향해 '위험 분자', '불순한 사상을 가진 이들'이라고 말한다. 불순한 사상을 누구를 향해서 불순한 사상인 것인가. 위험하다면 누구에게 위험하다는 것인가. 주어가 빠져있는 단어들. 그 숨은 주어와 대상을 생각해 보면 노예인 사람들이 아니다. 노예를 위험하게 하는 게 아니다. 바로 그들의 주인을 위험하게 하는 게 위험 분자이고, 주인을 위험하게 하는 것이 마치 자신을 위험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노예화된 인간이다.


안타깝게도 노예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미국이 흑인을 노예화할 때 노예들에게 계급을 주고, 노예들끼리 노예화를 하도록 시스템화했던 것처럼. 정상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도록 분노의 대상이 실체에 다가서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노예화의 또 다른 전략이다. 노예에서 해방되려면 노예를 사들인 주인을 노려야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노예를 적으로 삼는다. 지들끼리 싸워봐야 무엇이 바뀌겠는가. 주인 눈에는 멍청한 노예들의 웃기는 쇼 아니겠는가.


눈에 처박힌 바늘은 이제 사람들의 뇌 속에 처박힌 쇠침이 되었다. 교과서를 통한 사상 교육. 미디어를 통한 사상 교육. 이데올로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프로파간다와 편집된 의견들과 여론. 작업장에서 창조된 댓글들과 몇 백 원의 아르바이트비를 얻기 위해 하루종일 주인님을 위한 댓글을 다는 인간들과 AI. 노예와 뭐가 다르지. 백성과 뭐가 다르지. 주인님이 주시는 물방울로 목을 적실 생각을 하지 마라. 주인을 따르지 말고 물이 가득 담긴 우물로 향해라. 시스템에 굴종한 인간은 그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을 주인의 목적을 위해 모조리 내놓는다. 그렇게 인생 전체를 노예의 삶으로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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