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27.
지난 몇 주간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고민했다.
잊고 있었던 사실들을 하나 둘 기억해 보았다. 어린 시절 신에게 기도했던 순간들부터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일까지. 나는 어린 시절 신에게 기도했다. "거대한 통로가 되어볼 테니 나를 사용해 달라."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부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게도 보내줄 수 있는 거대한 통로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이유였다.
세상엔 버려진 사람들이 많다. 극심한 물부족에 놓인 인구는 20억 명. 전체의 1/4에 해당한다. 극심한 식량 부족에 놓인 인구는 8억 5천만 명. 하나의 국가 안에서도 빈부격차와 삶의 격차는 끔찍하지만, 전 세계를 보면 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중국에 갔을 때 나는 중국의 빈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바닥이 없는 집에서 벽돌로 된 벽과 낡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비만 막을 수 있는 그런 집들이었다. 옷을 걸 곳이 없어 벽에 못을 박아 한 벌뿐인 옷을 걸어둔다. 흙바닥에서 잔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빈곤이 가까운 중국에도 있었다.
그보다 먼 곳으로 가면 더욱 끔찍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많았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배웠는데, 이러한 미래를 보고서도 이 세상을 왜 창조한 것인가. 나는 그것에 대해 물음을 가지고, 신학적 답을 찾아보려 수많은 성경과 성경의 역사를 공부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들 자신들만의 망상과 해석을 가지고 신의 대리인을 자처했을 뿐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궁금했다. 진정 신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흑암에 놓인 이들을 구하러 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진정 신을 따른다면서 고작 하는 일이 교회 가서 매주 똑같은 죄로 울고 불고 신세 한탄이나 하는 인간들이 신을 따르는 인간들인가. 그 이상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절대적 존재인 신을 믿는다면서 그 누구보다 무능력한 신을 믿는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이 가르친 신을 더 이상 믿지는 않지만 신이 있다면 가장 낮은 곳에 있으리라 확신한다. 성경에 그랬다. "너희 중 가장 천하고 약한 자가 바로 나다." 예수가 돌아온다면 거대한 왕궁에서 자신을 재림 예수라고 부르는 인간이 아닌 가장 천하고 약한 자로 임하여 빛나는 이들을 찾겠노라고 그렇게 성경은 가르쳤다.
나는 예수를 만나고 싶고, 그와 진정으로 친구로 살고 싶었다. 이 망할 세상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약하고 천한 이들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예수를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오랫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부를 어떻게 가장 낮은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착취의 고리를 깰 수 있을까.
착취의 고리는 깊고 강력했다. 정부는 주조 차익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주조 차익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의 신용이 필요하고, 국가는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기축 통화가 되기 위해 석유를 페그 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신 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을 끝없이 감당해야 한다. 화폐를 만들어 내는 주체가 정해짐에 따라 그 규칙 속에서 모든 국가와 개개인은 따르게 된다. 가장 큰 파이를 먼저 먹는 미국부터 최후의 최후까지 남은 밥그릇에 붙은 밥풀로 연명하는 제3세계의 참담한 국가들까지.
미국이 기침을 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면, 그보다 연약한 국가들은 생사를 오간다. 내가 믿기에 아마도 AI가 더 발전해 가면서 제3세계 국가의 유일한 경쟁력인 저렴한 인건비까지도 밀어낸다면 그들이 생존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들이 세계 시장에서 가진 무기가 하나도 없다면 그들은 무너진 터전 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부패한 정부와 부패한 시스템. 한국보다 수십 배는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들에 속한 국민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세상이란 어떤 곳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부를 가장 낮은 곳으로 보낼 시스템을 고민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가장 높은 곳으로 최대한 중간 유통이 없이 연결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많은 열악한 국가들에서는 미국 같은 강대국에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산업 기반이나 서비스 수준이 되지 않는다. 교육 수준이 열악하고, 산업과 유통은 엉망이다. 그 어떤 방식으로도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고,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을 구할 골든 타임보다도 AI의 진보가 빠르다는 점이다.
미국 오프라인 마켓에서 동남아 직원들을 통해 원격으로 캐셔를 하는 시스템을 도입한 경우가 있다. 부를 직접적으로 동남아 국가로 보내는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그러나 이 역시 동남아 직원들의 인건비보다 저렴한 수준의 AI가 나와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이 비즈니스 모델도 존속될 수 없다.
그렇다. 강제적으로 부를 빼앗아 뿌리는 것이 아닌 산업과 교육, 그리고 해당 국가들의 전반적인 부패 정도까지 모두 해결되어야만 내가 신에게 요구했던 거대한 통로가 완성될 수 있었다.
나는 이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인프라를 구축하는 건설 회장님들과 만나기도 했다. 이들 중 몇몇은 제3세계 국가들의 계약을 받아 해당 국가에 인프라를 구축하고, 그와 연계되는 여러 국가적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인프라 사업은 가격이 정해져 있고, 마진율이 높지 않고 대부분의 자금이 선명하게 흐르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기 어렵다. 그러므로 거대한 ODA 자금에는 이외의 사업이 함께 연계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대한 ODA 자금 중 많은 부분은 해당 국가의 부정부패로 자금이 정상적으로 각 영세 사업체들까지 전달되지 못한다. 권력자의 비자금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자의 비자금을 조성해 주는 목적으로 이를 담당하는 회계사들과 중개인들은 엄청난 커미션을 획득한다. 나는 이들이 번 돈이 누군가의 생명을 깎아낸 돈이라 생각한다. 이 돈이 가난한 국가들에 올바르게 전달되었다면 그 나라의 아버지들은 일터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갈 수 있다. 조금은 영양가가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어머니들은 조금 더 건강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부패의 고리는 천문학적 ODA 자금을 가지고도 그 많은 인구를 구제하지 못했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는가. 국제기관들이 하는 노력을 이 답이었을까? 월드뱅크를 비롯한 수많은 기관들이 애쓰고 있지만 경제 논리에 기반하지 않고서는 결코 가장 바닥까지 돈이 내려갈 수 없었던 것 같다. 국제기관들은 표면적으로 비영리 집단이다. 모든 나라는 거래를 통해 살아간다고 했던 에덤 스미스의 말처럼, 강제성을 가진 칼이 아닌 거래 참여자들이 모두 이익이 되는 구조로 비즈니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부패에 참여하는 거래의 참여자들은 누구가 되어야 하며,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들의 게임의 룰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알아야 했다. 그래야만 지금도 물 한 모금이 없어 허덕이는 20억 명과 한 끼의 밥도 챙기기 힘든 8억 5천만 명을 살릴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