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만큼의 차이
비탈릭의 글들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정신을 알 수 있다. 블록체인의 트릴레마 중 개인적으로 비탈릭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탈중앙성이라 생각한다. 그의 글들을 보며 그는 탈중앙화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과적으로 블록체인의 고유한 가치를 공격받는 일로 여기는 것 같이 보이고, 이러한 해석의 기저에는 수많은 담론을 하나하나 봐야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더리움은 솔라나나 리플의 길을 걷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증명했다.
솔라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솔라나는 이더리움보다 극단적으로 중앙화된 체인이며 훨씬 빠른 블록 생성과 높은 TPS를 자랑한다. 반대로 이렇게 중앙화된 서비스면서 1년에도 몇 번씩 노드가 멈추는 기현상을 보이면서도 사람들에게 크게 공격당하지 않는 상황이 된 놀라운 체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솔라나는 중앙화된 접근 방식과 자신들만의 근본적 차별점들을 오히려 강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개발 측면에서도 그들은 EVM이 주류인 시장에 당당하게 Non-EVM을 제안했고, 이는 많은 체인들이 솔라나와 직접적인 스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시 당시만 해도 챌린지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크로스 브리지가 솔라나를 반드시 넣어야 하는 상황으로 개선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내러티브의 중심에서 투자자들에게 가장 많은 수익을 가져다준 것도 솔라나로 평가할 수 있다. 솔라나 폰을 통해서 지급한 에어드롭 NFT와 밈코인을 통해서 많은 투자자들이 수익을 얻었고, 그것이 솔라나 전체 마켓을 크게 올린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솔라나의 장점과 시장을 개척하는 능력은 높게 사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비탈릭이 추구하는 바가 내가 오랫동안 지지해 온 핵티비즘이나 검열 저장, 프라이버시, 중앙화되지 않은 블록체인의 가치 측면에서 언제나 옳다고 생각해 온 것도 사실이다. 즉 내 경우에는 솔라나의 행보가 놀라우면서도 동시에 저게 맞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념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나는 이더리움을 좋아하지만 탈중앙화의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있었다. 바로 거버넌스 토큰 확보를 통한 컴포넌트 공격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링크를 참조하면 되고, 나는 프로젝트들이 발행하는 거너번스 토큰이 민주주의의 연장선에서 탈중앙화된 권력의 위험성을 함의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권리를 거버넌스 토큰으로 나누어 판매하는 게 골자인데, 공격자들은 거너번스 토큰을 확보하여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고 프로젝트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결과를 이끌 수 있다.
자본주의 관점에서는 이렇게 반박도 가능하다. "거버넌스 토큰 팔 때는 돈 벌어서 좋고, 자신들 뜻대로 안 되니까 공격자라고 취급한다면 누가 거너번스 토큰을 사겠냐?"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재단은 이러한 이유로 거버넌스 토큰을 최종 설거지 토큰으로 활용하고, 애초에 유의미한 담론을 진행하는 목적으로도 사용하지 않거나 전체 풀에서 일부분의 권력만을 양도하기도 한다. 즉 애초에 중앙화된 프로젝트인데, 자금만 확보하고 명목상의 토큰을 파는 것이다.
그러나 탈중앙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노드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프로젝트의 의결권이 100% 공개된 거너번스 토큰의 경우 민주주의의 1표와 동일한 효과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표를 많이 확보한 이들이 해당 조직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보자. 기업도 기업의 방향성을 주주 총회 등을 통해 논의를 하지만 하나하나의 주제를 모두 주주 투표를 통해 결정하지 않는다. 선거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의원을 선출하면 그 의원은 매번 자신을 지지해 준 이들의 의견을 묻는 게 아니라 그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우리가 따르고 있는 방식이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이더리움과 솔라나 또는 이더리움과 중앙화된 체인 간의 논쟁을 볼 때마다 직접 민주주의와 대의 민주주의의 차이를 논의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거버넌스 토큰의 활용도 마찬가지다. 재단과 프로젝트(또는 DAO)에 따라 어떤 곳은 직접 민주주의화 된 거너번스 운영을 지향하고, 체인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탈중앙화된 노드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시스템은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가까운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고, 반대로 중앙화될수록 대의 민주주의, 그보다 더 심한 중앙화 체인은 독재에 가까운 형태를 보인다.
중앙화 정도에 대해 민주주의를 사용한 것은 비유적 표현이지만 직접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유는 중앙화된 체인의 장점은 효율성이겠지만 반대로 권력이 한쪽으로 몰리게 되어 견제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독단적 시스템이 되고, 중앙화된 서비스다 보니 메인넷이 멈출 때마다 투자자들은 대응할 방법이 없다. 생각해 보면 웃긴 시스템이다. 만약 이처럼 중앙화된 블록체인에서 이를 정말로 악용한다면 숏 배팅과 롱 배팅을 사용해 자신들을 믿어주는 투자자들 상대로 사기 치기 참 좋은 구조가 된다.
물론 대놓고 사람들은 중앙화된 체인을 보고 그렇게 공격하는 일은 없지만 만에 하나 그것이 사실이거나 그러한 일을 내부적으로 진행한 일이 있었다면, 단 한 번의 사건만 밝혀져도 해당 체인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만큼 중앙화된 시스템에서 악용될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점은 독재 정부가 효율성 측면에서는 좋지만 부패하면 대응이 불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블록체인 시장이 진보함에 따라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의 차이도 제품에 반영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인식과도 유사하다. 내가 종종 이야기해 온 우리나라의 과거를 봐도 그렇다. 한국은 카카오톡을 잘 사용하다가 2013년 경 카카오톡 감찰 논란이 발생하자 못 믿겠다며 텔레그램으로 넘어가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이후 멀쩡히 텔레그램 사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음에도 N번방 사건과 최근 딥페이크 사건을 겪으니 텔레그램의 정책과 일반 사용자들까지 싸잡아 욕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동일한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감찰에 저항하고, 어떤 경우에는 감찰을 옹호한다. 텔레그램을 예로 들자면 텔레그램은 애초에 MTProto를 사용해 엔드-투-엔드 암호화가 되어 있어 설령 데이터베이스를 협조 자료로 준다고 해도 그것을 해독할 수 없다. 애초에 사찰이 불가능한 구조로 서비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파벨 두로프가 협조하겠다고 한 범주도 IP 정보 등 한정적인 정보이자 구조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보에 대해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배경과 한계점 그리고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대중의 의견은 매번 정반대의 방향을 선호하기도 한다. 이더리움의 정체성과 방향성은 탈중앙화에 있고, 솔라나를 비롯한 중앙화된 체인은 중앙화에 있다. 서로가 추구하는 바가 다르며 그 안에서 자신들의 가치를 만들어내 가는 것이 그들 각자의 몫이다.
다만 제목에서 말한 대로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봤을 때 탈중앙화된 시스템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겠는가? 또는 극단적으로 탈중앙화된 노드의 처리 방식이 직접 민주주의의 떨어지는 효율성만큼이라 부족하다면 우리가 직접 민주주의가 아닌 대의 민주주의를 택한 것처럼 대안적 방식이 사용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고민이 든다. 나는 이 담론이 최근 논의 중인 샤드 처리와도 유사하고, 또한 벨리데이터 노드를 제삼자에게 양도하는 아이겐레이어와도 연결된다고 말하고 싶다.
재밌게도 블록체인의 구조적 발전이 민주주의의 발전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며 성장하고 있고, 동시에 이러한 이유로 전체 노드의 과반을 넘기는 공격인 51%의 공격이 마치 민주주의를 독재로 바꾸는 이들이 여론을 조작하던 표를 조작해 과득표 대통령을 만드는 것 같았다.
어쩌면 금융 시스템에서 우리가 바라는 빠르고, 신뢰할만하며, 참조 무결성이 보장되고, 공격에서 안전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제 더해질 것은 기술이 아닌 민주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접근이 아닐까. 블록체인의 이데올로기적의 발전이 따라오지 못한다면 그다음 헤게모니도 임팩트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오랫동안 이더리움에서 수많은 담론이 오고 가면서도 답을 찾아내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