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 시장의 편 가르기가 일어나는 아시아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인 CBDC는 수년간 논의되고 있지만 그 진행도와 방식에 대해서 각 국가별로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이유는 간단하다. 해당 정보가 공개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각 국가에서 CBDC를 진행하더라고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파일럿 테스트 참여 기업을 공개하는 한국의 경우가 있을 뿐 아무런 정보 공개 없이 진행하는 국가가 더 많다.
한국은 예외적으로 CBDC를 진행함에 있어 유수의 기업들이 공개적으로 참여했고, 사실상의 개발도 거의 끝난 상태이다. 그렇다면 다른 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 패턴일까 싶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몇몇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CBDC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사이드 체인 방식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우리는 화폐 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제 송금 시스템인 SWIFT는 그 어떤 면에서도 우위를 가져가지 못하고, 도리어 몇몇 금융 사고를 만들어내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달러와 위안, 앤 모두 국제 금융 시장에서 주축 통화로 사용되기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데, 당연하게도 이를 디지털화로 변경하는 CBDC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몇몇 사람들은 CBDC가 가진 온체인 공개성 때문에 사람들의 모든 거래 기록을 추적하여,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빅브라더 사회를 이야기하는데, 사실 반대의 목표가 있기에 그러한 미래보다는 조금 멀 것이라는 게 내 예상이다.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중국의 CBDC 시스템을 아시아의 국가들 중 많은 국가들이 차용하는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국제 금융 시스템에서 다른 생태계와 호환되기 힘든 자체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나스닥이 1초에 수만 건 이상의 거래를 완벽하게 호환하는 생태계가 세계 최고의 거래소로 인정받고, 그 덕분에 더 많은 자본이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국제적으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표준이 없는 시장에서 표준에 가까운 게임의 룰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종속된 국가들이나 경쟁력이 약한 국가일수록 자신들이 표준을 만들 수 없다. 강한 쪽이 규칙을 만들면 그것에 편승하는 방법을 택하는 게 생존 전략이고, 당연한 포지션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발전이 덜 된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서 개발하고 이미 지역 테스트 중인 CBDC를 기준으로 생태계를 구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시중은행들이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블록체인에서 메인 체인의 코어 구조를 가져가면서 약간의 변화를 주어 만드는 패턴을 사이드 체인이라 부르는데,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CBDC 구조는 중국에서 코어를 만든 CBDC의 사이드 체인일 것이라는 예측이다.
CBDC의 화폐적 효용성은 현금 이상이며, 각 국가에서 정한 기준금리에 고스란히 영향을 받기 때문에 CBDC의 발행 시점과 도입 시점, 그리고 그것의 금융 상품, 가령 채권 시장이 활성화되는 시점이 전 세계의 CBDC의 일괄 도입 시점이 될 것이다. 이는 금리 차이가 국가 단위의 거시적 자본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채권의 이자와 할인율, 현재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IMF 보고서에서도 나와있지만 아시아는 전 세계 어느 지역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CBDC를 도입하려는 압박이 있는 지역이다.(관련 자료) 문제는 이러한 표준화 작업이 완성되어 각 국가의 금융 시장에서 시스템이 완성되는 시점과 그 정보를 바탕으로 각 시중 은행의 태스크 포스에서 대응할 적절한 전략을 만드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며, 그것에 의존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와 PG에게도 별개라는 점이다.
이쯤에서 한국의 금융 시장의 문제점을 하나 이야기해보고 싶다. 최근에 카카오페이가 알리에게 개인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으로 논란이 있었다.(한국 사람 신상을 털려면 중국에서 사면된다는 농담이 사실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알아야 할 배경지식이 있다. 짧게 요약하면 한국의 핀테크가 해외 결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맞추기 어려운 부분을 알리 페이 등에 의존하여 해결했다. 국제 표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한국의 금융 시장은 굉장히 폐쇄적이고, 많은 규제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핀테크 현재까지 규제에 허덕이며 간신히 규제를 맞춰 한국 시장에서는 살아남고 있지만 국제 경쟁력은 형편없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CBDC와 같은 논의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핀테크가 규제에 허덕이는 것처럼 한국도 자체적으로 구축한 CBDC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아시아권 전체에 영향력을 미치는 중국의 CBDC 시스템과 호환할 것이며, 또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멍청한 법들로 이러한 자본 흐름에 뒤쳐져갈지 상상하기 힘들다.
앞서 경쟁력이 약한 국가들은 큰 국가의 시스템에 편승하여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국제 거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다. 물론 한국이 아예 경쟁력이 없는 국가는 아니지만 아직까지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특히 핀테크 쪽에서 보여온 행보를 보자면 앞으로의 멍청한 행보가 눈에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학창 시절로 비유하자면 한 반에 팀이 나뉘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CBDC라는 수련회에 다 놀러 가는데, 같은 방에서 잘 친구들을 학교 끝나고 모으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한국은 수출 국가이고, 대중무역은 한국 경제에 언제나 중요했다. 위에서부터 휘청휘청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법을 아무렇게나 만들면 그것에 맞춰 사업을 진행하는 사업자들은 쓸모도 없는 시스템 구축에 시간과 자본 모두를 낭비하게 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이 세 국가 사이에서 한국은 아주 영리하게 외교해야 하고, 금융 표준을 가져가 세계의 자본들이 편하게 들어올 수 있는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 와중에 과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이가 있다면 한국 경제도 조금의 희망이 생기지 않겠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