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권력을 재분배하는 일
얼마 전 작성 했던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나는 가장 높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부가 만들어내는 참상에 관심이 많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책 오래된 미래를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모습이 나온다.
자본주의의 파도가 덮치지 않은 라다크에서의 삶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화폐가 없이 매년 다들 생산한 식량을 바탕으로 지역 경제가 순환한다. 그러나 화폐가 통용되고, 화폐를 통해서 거래를 하게 되니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 그전에는 문제없이 돌아가던 지역 경제는 화폐 거래를 기준으로는 일꾼들을 고용할 돈도 만들 수 없고, 그 결과 지역 경제는 붕괴해 젊은 이들은 도시로 갈 수밖에 없다.
화폐를 발행하는 입장에서는 주조차익의 이점을 보고 그 돈이 처음 흐르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전 세계 노동력과 그들이 생산하는 가치를 아주 저렴하게 구입하게 된다. 반면 경쟁력 없는 화폐가 통용되는 사회의 사람들은 이러한 경제 시스템에서 그들이 생존할 방법이 없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실제 가치가 아닌 화폐로 변환된 숫자로 거래하게 되면 거래가 불가해지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우리나라도 과거엔 쌀 등을 통해 물물교환을 하고, 가치가 다른 가치로 직접 교환되는 방식이었을 때가 있었다. 이때는 가치가 직접 교환됐고, 우리나라에 있던 화폐 역시 국가에서 만들어내는 가치와 연결되니 가치의 괴리가 크지 않다. 반면 화폐가 국제단위로 거래가 되고, 우리가 생산해 내는 가치(예를 들어 쌀)가 화폐로 변환되어 국제 시장에 거래가 되고, 그 거래를 기준으로 다시 다른 제품과 거래가 된다면 그때부터는 가격이 급락하는 것이다. 경쟁력 없는 화폐에서 나오는 결과이다.
결국 화폐의 경쟁력으로 인해 작은 소규모 공동체의 삶까지도 파괴가 되고, 그들 역시 낮은 가치의 화폐라도 얻기 위해 도시로 가고, 도시에서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 일하는 삶을 살게 된다. 물론 책 '오래된 미래'가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의 나쁜 점을 강조하고 싶지만은 않다. 이로 인해 기존 농경사회에서는 절대 누리지 못했던 환상적인 서비스들과 개인이라면 수백억을 주고도 사기 힘든 서비스를 우리는 단 돈 몇 만 원, 몇 십만 원에 쓰는 시대가 됐다. 아무것도 없는 사회에서 내가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아이폰을 만들 수 있겠는가. 아이폰을 20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달에 2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수천 개의 영화와 새롭게 제작되는 미디어 콘텐츠를 볼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국가의 화폐의 경쟁력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가장 낮은 곳의 삶을 가장 심각하게 파괴하게 되고, 그 결과 그들은 노예에 가까운 삶을 살아도 선진국 수준에는 발끝에도 못 따라가는 수익을 거두게 된다. 우리는 그들이 생산한 플라스틱과 섬유 제품들, 폭스콘에서 만들어지는 제품들의 수혜를 보고 있다.
거대한 부가 재분배되기 위해서 국가 단위의 ODA 이동이 큰 유효성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난 수 백 년 동안 아프리카 등의 제3 세계로 흘러간 자금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설명했다.
엔지니어이자 한 명의 사업가로서 내가 가진 아이디어는 이것이다. 바로 국가 단위의 유동성 풀이 제공되는 블록체인 시스템이다. 구조는 간단하다. 비트코인에 사용된 PoW 방식에서는 채굴에 사용된 컴퓨터(노드)마다 보상이 제공된다. 이것을 조금 더 개선하여 국가 단위마다 제공되는 보상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다. 가령 미국에 100개의 노드가 얻을 수 있는 보상이나 한국의 10개의 노드가 얻는 보상이 동일하게 말이다.
이러한 구조는 결과적으로 채굴자가 최대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노드가 적은 국가에 인프라 설비를 만들 명분이 되고, 동시에 해당 국가에 만들어진 인프라를 통해 직접적으로 부의 이전이 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지리적 기준에서 모든 국가에게 동일한 캡을 제공하기 때문에 채굴자는 최대한 참여자가 적은 국가에서 채굴을 진행하면 된다.
물론 이 방식에는 여러 단점도 존재한다. 먼저 PoW는 전력 사용 측면에서 경제적이지도, 환경적이지도 못하다는 평가가 있어 다른 증명 방식으로 전환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증명 방식의 변화도 필요할 것이고, 지리적 베리어를 통해 수익을 분배한다는 개념은 IP 주소를 우회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면 이 역시도 쉽게 파훼될 수 있다. 단편적인 예로 과거 '포켓몬 고'라는 게임에서 희귀한 위치에만 사는 포켓몬을 잡기 위해 GPS를 변환해 잡는 편법이 사용됐었던 전례를 생각해 보면 어뷰징이 어렵지도 않은 것이다. 이를 PoL(Proof of Location)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지만 PoL의 방식을 뛰어넘을 생각이다. 또한 해당 시스템이 단순히 지리적 부의 재분배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 자체로는 효용성이 증명될 수 없다. 레이어 1이 가치가 생기기 위해서는 그것 자체의 비교 우위 또는 그것이 제공하는 플랫폼으로써의 우위가 있어야 한다.
나는 그것의 답으로 인프라의 분산을 제공하는 DePIN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엔비디아가 진행 중인 렌더나 클라우드 저장 공간을 분산시킨 파일코인 처럼 말이다. 다만 각각의 시나리오에는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매번 있어왔다. 이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블록체인 트릴레마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어떤 접근으로 이 위에 올라갈 여러 DApp을 지원할지의 도전들이 모두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두 번째 일은 가장 높은 부가 가장 열악한 지역과 국가로 직접적인 전파를 할 수 있는 시스템에 있고, 그것이 NGO나 단순한 지원 방식이 아닌 양측이 만족할만한 거래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