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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13. 2024

3과 8

2024. 10. 13.

포커는 공평하게 랜덤한 카드를 받지만 카드의 가치는 그때그때 달라진다. AA는 가장 좋은 손패지만 프리 플랍 단계에서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면 게임이 역전될 수 있다. 턴을 지나 리버에 다다르고, 마지막 쇼다운까지 마치고 나야 승패가 결정된다.


변변찮은 인생은 3과 8을 쥔 것과 비슷하다. 두 개를 이어서 스트레이트를 만들 수도 없고, 페어를 이루지도 못한다. A, K, Q처럼 자체의 힘이 세지도 않다. 그저 중간에 널브러진 카드이기에 블러핑을 잘하거나 또는 테이블에 깔리는 카드에 걸어야 한다. 하지만 현명한 플레이어라면 프리플랍에서 폴드할 것이다.


인생은 포커와 달리 프리플랍에서 받은 카드도 있지만 살면서 늘어나는 카드도 있다. 부모과 가족에게 물려받은 재능. 아름다움, 똑똑함, 말주변, 친절함, 터프함 등 DNA와 사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들이 있다. 동시에 나이를 먹어가면서 늘어가는 카드에는 직업과 직장, 사회적 위치, 재산, 학력 등이 있다. 


현명한 플레이어라면 손에 든 패가 보잘것없을 때 나머지 카드를 높은 가치로 채워서 자신의 승률을 끌어올릴 것이다. 패를 온전히 버리고 새로운 게임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면 더 좋은 카드가 늘어나야 이 게임에서 승산이 있다. 


가장 멍청한 플레이어는 누구인가. 그 어떤 조합도 만들 수 없는 손패를 가지고, 새로운 카드도 받지 않는 머저리이다. 모양도 다르고, 스트레이트도 만들 수 없고, 플러쉬도 만들 수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카드를 늘리지 못하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카드를 다 꺼내볼 필요도 없이 그 머저리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다. 죽을 때까지 손에 벌벌 떨며 카드를 쥐고 있다고 한들 내가 쥔 무기가 바뀌겠는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판별하는 능력이 있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약자이면 약자의 문법과 약자의 행동 양식을 사용해 살아간다. 반대로 강자이면 강자의 문법과 행동 양식이 몸에 밴다. 지식인들은 지식인다운 글을 쓰고, 변호사들은 변호사들답게 글을 쓴다. 옷을 입어도, 말을 해도, 우리는 그들이 정확히 누구인지 몰라도 뿜어져 나오는 카드의 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자신이 약자이면서 승리를 위한 카드를 모으지 않는 멍청이는 승리할 생각이 없는 인간이다. 하늘에서 그를 위해 천사를 내려보내주어야 할까. 아니면 로또를 당첨시켜 주어 수중에 몇 억 원의 돈이 덩어리로 떨어져야 할까.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당당한 사람이 누구일까. 손패에 승리를 위한 모든 카드가 다 모인 사람일 것이다. 좋은 카드를 충분히 모아서 더 이상 게임을 더 볼 필요도 없는 상황에 온 사람. 그들에게 이 게임은 어떤 모습일까. 결말을 알고 포커를 하는 플레이어는 다른 이들이 하는 블러핑과 끈질긴 모습들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이미 이 조합에서 내가 가장 좋은 패인데, 블러핑을 치면서 팟을 키운다면, 속는 척하면서 팟을 따라간다. 신나는 여정이다. 승리자에겐 세상은 참으로 즐겁고 재밌는 여정이다.


애초에 말아먹을 카드만 쥐고 세상에 태어나서, 나이를 먹도록 손에 쥔 카드가 떨어진 이들에게는 선택지가 있다. 큰 게임에 참여하려면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 큰 게임에 참여할 생각이 없다면 카드를 모을 필요도 없다. 작은 세상에서 살려면 훈련이 무슨 필요가 있나. 적당히 월급을 아껴 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쁠 것이다. 그러나 정말 큰 판에서 플레이를 할 사람이라면 보법부터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모두 다 에이스 하나씩은 들고 있는 게임이라면 나는 에이스가 없더라도 K 페어를 쥐고 오만하는 A의 뒤통수를 노릴 수도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큰 게임에 참여할 생각이라면 큰 게임의 플레이어 다운 행보를 보여야 한다. 범부처럼 살지 말고, 평범한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일들을 해내야 한다. 내가 설령 손에 쥔 게 형편없는 쉿 카드뿐이더라도 블러핑으로 에이스 페어를 잡아내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착실하게 카드부터 늘려야 한다. 여기 모인 상대는 모두 블러핑만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아니기에. 블러핑 하는 인간들을 모조리 털어버리고 올라온 이들이기에. 심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라면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살면 된다. 그들을 위한 놀이터도 세상엔 많다. 어린이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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