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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16. 2024

아마도 없을 거야

2024. 10. 16.

내가 누군가와 함께 반년쯤 일할 때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만 같다. 내가 그들과 하루에 6시간 정도 같은 공간에 있었다는 사실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오만함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6시간 가지고는 나를 알 방법이 없을 거다.


나는 아직까지 수년간 연애나 친구들과 모임을 하면서 내가 여러 조직과 함께 했던 수사 내용이나 비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단 한 구절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저 가끔씩 글에 이런저런 일에 도움을 준다 정도로만 표기해 왔다. 나와 2년 넘게 일한 사람들에게도 내가 어떤 사건을 어떻게 해결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단 한 마디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또한 플렉스웹을 운영할 때도, 그 이후에 사업을 할 때도, 그전에 사업을 할 때도, 수 백 개의 글 안에도 내가 한 모든 일을 적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지켜져야 할 비밀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에 하나의 조직에 근무하고,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 근무하면 회사만 근무하고, 나머지는 취미나 자기 계발, 여러 사교 활동을 하며 산다. 나는 지난 4년간 하나의 조직에서 일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애초에 내가 뭘 하는지 9 to 6로 함께 있던 이들을 알 방법이 없었고, 애인들도 알 방법이 없었다. 항상 그렇지만 여자친구랑 일 얘기하는 건 별로 사랑받을만한 주제의 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 말도 안하진 않았다. 가끔 데이트를 하며 산책을 할 때, 내가 하고 있는 다른 일에 대한 비전을 넌지시 던져보곤 했다. 고요한 연못에 작은 돌멩이를 던지듯 던져본 말에는 숨겨진 무게가 있었지만 보통은 내가 가진 비전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렇게 연못은 다시 고요해진 것이다.


때로는 마음이 힘든 순간도 많았다.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일은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같은 신념과 비전을 품고 살아온 이들을 상실하는 슬픔은 크고 아프다. 나는 2가지, 때로는 3가지 버전의 삶을 살며 그 안에서 내가 품은 선명한 비전을 향해 살아왔다. 때로는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혼란스러운 순간순간들마다 내린 결정은 인생의 선명한 기록들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힘차게 부는 바람 속에 흔들리는 배를 타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 빗방울인지 부서진 파도인지 알 수 없는 차가움이 얼굴에 닿았다. 바다 끝 보이는 해안의 밝은 빛을 보고, 나는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렇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나는 그렇게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왔다. 주기적으로 연락처의 일부를 삭제한다. 때로는 눈을 피해야 하고, 때로는 눈 안에 들어와야 하고. 때로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웃고 떠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웃고 떠드는 모습이 광대처럼 보이기도 하나보다.


바다에 한 죄수가 빠졌다. 무거운 추가 발목에 묶여 계속해서 바다 깊은 곳으로 끌어내려 간다. 허우적거리는 와중에 보이는 밖의 모습은 햇살이 물에 부서져 보여 찬란하기 그지없다. 죽음의 순간에 보게 된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바다와 햇빛이라니 모순이다. 하지만 남은 숨은 얼마 되지 않고,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순간 물 밖이 아닌 발목을 잡고, 발에 묶인 사슬을 끊으려 애쓴다. 발목을 부러뜨려서라도 살갗이 찢어져도 살기 위해서 좁은 틈 사이로 발을 빼내야 한다. 피투성이 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피가 바다를 물들인다. 사슬을 버리고 물 밖으로 향한다. 눈앞에 보이는 태양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죽은 줄 알았던 죄수는 살아나고, 그를 빠뜨려 죽이려 했던 이들은 찾을 수 없었다.


다르기 때문에 다르고, 다른 길을 걷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다. 같은 기준으로 같은 삶의 무게로 비교될 수 없다.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같은 것을 보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물어본다. "나랑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사는 사람을 대한민국에서 단 한 명이라도 알고 있어?" 나는 함께 길을 걷는 형제에게 물어본다. "나처럼 사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알고 있어?"


아마도 없을 거다. 아마도 나는 그와 다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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