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8.
옆을 보지도 않고, 뒤를 보지도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언제나 앞으로만 나아갈 것이다. 옆에 있는 과거의 친구들, 과거의 인연들, 모두 다 뒤로하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저 앞에 빛나는 보물이 보이니 말이다.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이 얼마 전에 있었다. 잠을 자려 누웠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 때 큰 제안을 했던 그룹의 소식을 찾아보았다. 그 그룹은 나와의 약속을 버리고, 그 당시 괜찮아 보이는 어떤 이와 손을 잡았다. 굉장히 실망스러웠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손잡은 이는 수만 명에게 피해를 끼친 사기꾼이었고, 지금까지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왔지만 곧 법의 심판이 그들을 향하리란 걸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단 1년 반 만에 모든 기만은 진실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됐다. 수천억 원의 행방과 그 범죄를 옹호하여 한몫 챙기려는 날파리들과. 온갖 인간들의 숨겨진 욕망은 고작 돈 몇 푼에 계좌에서 계좌로 전달되어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숨길 수 없는 진실이다.
권선징악을 믿는다면 순수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권선징악을 믿는 편이다. 그리고 지금은 잡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살아남은 파리들 역시도 똥을 끊지 못한다면 언젠가 그들의 좋아하는 쉬운 돈에 눈이 멀어 철창살로 감싸진 방에서 잠을 잘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길이고, 그들이 앞서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앞서지 못하는 이유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1년에 수십에서 수백 명을 만나고, 매 달 수십 개의 콜드콜을 보내면서 깨달은 것은 앞서간다는 게 실제로 앞선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업계 내부로 들어가면 평판이 바닥의 바닥을 향해 추락한 인물들이 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는 그렇지 않은 허울뿐인 인간들도 있다. 감추고 싶은 게 많으니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망하기 직전이니 투자자들을 속이기 위해 더 큰 블러핑을 한다. 블러핑 말고는 전략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건 선택지가 아닌 유일한 길인 셈이다.
하지만 끝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이 게임은 이미 과거에 역전된 게임이었다. 그들이 앞선 것 같았지만 그들은 역전당했었고,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판세가 역전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말이다.
사람들의 눈과 기준에 너무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다. 보이는 것을 뒤에 흐르는 진실과 그 안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어떤 것에 대해 깊게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부수고 그 안에 내용물을 만져봐야만 알 수 있기도 하다. 겉만 보고서 안다는 착각을 하고, 눈에 보이는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 단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평범한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그렇기에 한 단계만 더 깊게, 한 번만 더 깊게 볼 수 있는 시야는 사람의 지평을 넓히는 힘을 준다.
우리는 때로 잘 알지 못하는 상대를 악마화하기도 한다. 또한 잘 알지 못하는 상대를 천사화하기도 한다. 잘 모르고, 대화를 나눈 적도 없고, 그저 보이는 몇 가지 모습과 태도, 억양, 말투 정도를 통해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한 프리즘에 갇혀 있기에 사기꾼의 간사한 말에 속아 넘어가고, 아군을 적으로 돌리고, 적을 아군으로 두는 실수를 한다.
나를 배신한 이들은 수억의 손해를 입었고, 수억의 손해보다 큰 1년 반의 시간을 잃었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증명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끝없는 도전의 역사를 증명할 것이고, 누군가는 죄악의 역사를 기록한다. 나는 역전의 역사를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수함처럼 나아간다. 세상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세상에 기여를 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힌다. 나의 관심은 그곳에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 가장 큰 빛이 도착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더러운 이들을 일 순간에 치우기 위해서. 그것에 1년이 걸리든 2년이 걸리든 끝은 같다. 죄의 삯은 죽음이고, 죄를 감추기 위해서는 더 큰 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