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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Oct 19. 2024

별장과 원피스

2024. 10. 19.

Le Castle Vania – Red Circle (LED Spirals & Shots Fired)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저 중개인만 만났으면 됐으니. 대부분의 별장은 사시사철 별장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적절한 상업용 부동산의 가치를 가지고 부를 지속적으로 창출한다. 그러다 가끔 별장에서 쉬면 된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날에. 돈을 왕창 쓰고 싶은 날에. 그럴 때 참 좋은 곳이다.


별장의 모습은 익숙한 유럽 영화에 나오는 모습과 같았다. 길은 오래된 벽돌로 다져져 차가 지나다닐 순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을 위한 길이다. 아마도 오래전 마차를 위해 만들어진 길이었던 것 같다. 주변의 공기는 바닷바람을 타고 조금은 짠 바다의 향이 전해진다. 하나의 집에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모두 바라볼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선글라스를 낀 백인들은 자외선에 약하다. 푸른 눈은 적은 멜라닌으로 강한 빛을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나는 검은 눈을 가졌지만 선글라스가 편하다. 미간을 좁힐 필요도 없이 길을 걸어 다녀도 되고, 밝은 빛으로 보기 힘들었던 주변의 디테일을 선글라스를 통해 더 편하게 볼 수 있게 된다.


중개인과는 함께 두바이를 향했어야 했다. 그는 두바이를 좋아했다. 세금이 없는 광기의 자본주의 아니겠는가. 수많은 자본이 두바이를 향하고, 두바이에서는 그 돈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게임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부자들이 모인다고 해도 이곳만 하지는 못했다. 


영국인들에게 두바이는 부자로 비유하면 3등쯤 되는 부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더 큰 부자들이 머무는 곳은 별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주 작은 국가. 프랑스 아래의 모나코라 했다. 모나코는 확실히 다른 곳이다. 공기가 다르다는 느낌이 아니라 게임의 법칙이 다르게 흐른다고 해야 할까. 치트키를 모두 치고 게임을 하는 이들이 하는 그다음 레벨의 게임이 이뤄지는 곳이랄까. 아니면 그 모든 것과 무관하게 지낼 수 있는 보호받는 곳일까.


나는 항상 궁금했다. 그들은 무엇을 원할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왜 거기에 있을까. 그곳에서 무엇을 위해 모이는 것일까. 이유 없이 모이는 일은 없다. 그곳이 아름답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곳에만 있는 보물이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고, 정답은 질문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정답을 찾기 위해선 질문을 잘해야 했다. 질문만 가지고도 그가 정답에 근접한 인물인지 아닌지가 판별된다. 


한국에서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규칙으로 게임을 한다. 한국에서 큰 일을 펼치기 위해 힘을 써줄 수 있는 기업과 인물들은 각 분야별로 정해져 있는 듯하다. 어딜 가나 똑같은 이름이 거론되고, 어딜 가나 똑같은 회사를 통해 자금을 수혈받았다고 말한다. 한국은 한국의 룰을 따라 플레이되어야 하는 것처럼, 다른 국가에는 다른 국가의 룰이 있고, 그 안에는 어쩌면 치트키 같은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만화 원피스에서는 모든 것을 차지한 남자, 골 D. 로저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원피스를 마지막 섬에 두고 왔다며 만화가 시작된다. 그의 말 한마디를 믿고 온갖 해적들이 보물을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가장 위대한 해적의 죽기 전 마지막 말은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었다. 그가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만화 속 캐릭터들은 그것을 믿었고, 목숨을 걸고 바다로 뛰쳐나간다. 


이 세상은 다를까. 이 세상엔 원피스가 존재하지 않을까. 원피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내가 바라는 수많은 것들이 일 순간에 얻을 수 있는 보물 같은 것이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까. 창업가들은 그 보물이 자신의 사업에 있다고 믿는다. 사업을 통해 부를 얻고, 명예도 얻고, 원대한 꿈을 이룰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진정으로 원피스 같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많은 사업가들은 원대한 꿈 앞에 좌절하고, 실패하고, 배가 침몰하며 모험을 마무리 짓는다.


섬에 정착하고 모험을 끝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반대로 존재하는지 여부도 확인 안 된 원피스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에베레스트 꼭대기에 도착하면 얻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면 나는 보물 그 자체보다도 그 보물에 근접한 사황을 찾고 싶었다. 가장 원피스에 근접한 황제들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이 왜 원피스를 차지하지 못한 것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만화 속 세상과 현실 속 세상은 분리해 보는 게 맞겠지만 나에겐 게임의 규칙을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실마리를 가진 사람들은 만화 속 주인공이 만나는 중요한 조력자들 같이 느껴졌고, 그들이 숨겨둔 진실들이 시간이 지나며 밝혀졌을 때 다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바다의 경계를 두고 수많은 이들이 각자의 꿈을 향해 살아간다. 한쪽 골목에서는 더 맛있는 빵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제빵사의 모습이 보이고, 다른 골목에서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거래를 논하는 이가 서있다. 결국 모두는 어떤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그들의 목적을 안다면,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도 알 수 있고,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를 안다면 그 목적지에 무엇인가 있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게임의 룰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 보물을 다 찾고 나면 어떤 기분이 들려나. 나라면 보물을 다시 숨겨두고 싶을 것 같다. 보물지도를 뿌려두고, 조용한 별장에서 모험을 마친 도전자를 기다리고 싶다. 그렇게 노년을 보낼 수 있다면 누가 그곳에 도착할지 기다리는 삶도 꽤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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