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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Nov 20. 2024

기억해야 할 것

2024. 11. 20.

Oliver Sadie - The Journey


고통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두려움에 다시 맞설 수 있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여전히 도망자로 남을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에서 도망친다면 나는 언제까지나 도망자로 살아야 한다. 세상엔 온갖 고통이 가득하다. 이유 없이 시기하는 이들부터 조금만 잘되도 나타나는 온갖 형태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어떤 이는 교묘한 사기를 치기 위해. 어떤 이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웃는 얼굴로 접근해 힘들게 얻은 것을 빼앗아갈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귀한 것을 노리는 사람들 중에는 꼭 합법적인 절차만을 따르는 이들은 없으니 말이다.


폭력도 그렇다. 많은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폭력을 경험한다. 가정에서 폭력을 경험할 수 있고,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다. 가해자는 친구가 될 수도, 가족이 될 수도, 선생이 될 수도, 지나가는 어른들이 될 수도. 온갖 가해자가 나타나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을 먹잇감으로 집어 삼길 준비를 한다. 배가 고픈 늑대는 무리에서 떨어진 연약한 어린양을 노린다.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은 그렇게 어린양의 심정으로 살점이 뜯기고, 영혼이 뜯긴다. 감추고 싶은 거대한 상처가 육체와 영혼에 남는다.


고통이 가깝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괴롭지만 그것만큼 강인해질 방법도 딱히 없다. 임박한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과 도래하지 않을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의 마음가짐이 다른 것처럼. 임박한 고통과 선명한 고통의 기억은 다가올 전투에 대해 깊고 선명한 준비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아픔을 피하는 일은 정답이 아니다. 팔을 다쳤으면 팔이 낫지 않고는 고통에서 해방될 수 없는 법이다. 요즘 시대는 고통의 출처와 회복의 출처를 다르게 두는 엉뚱한 이들이 가득하다. 사람들에게서 얻은 괴로움을 해결하지 못해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때운다. 아픈 곳 이외의 부위를 치유하는 것은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될지라도 직접적으로는 해결책이 아니다. 살이 찢어져 피를 쏟고 있다면 고통스러워도 소독을 하고, 바늘을 찔러 살을 꿰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흐르는 피를 멈출 수 없다. 


안타깝게도 사람은 기억해야 할 것을 잊고, 잊어야 할 것을 기억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기억이다. 우리가 더 나은 사람으로 완성되는데 필요한 기억은 우리를 기분 좋고 행복하게만 만들어 줄 꽃다운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쉼을 주는 기억이며, 우리를 강인하게 해 줄 기억은 수많은 패배의 역사와 슬픔의 역사에 담겨있다. 아픔을 기억하면, 다시는 그 아픔을 겪지 않겠다 다짐할 수 있다. 패배를 겪었다면 패배를 기억하며 다시는 똑같은 패배를 당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완성된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서 업그레이드되고, 다음 버전의 나로 성장한다. 만약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동물이 있다면 과거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할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똑같은 고통을 매일 겪으면서도 바뀌지 못하는 이들과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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