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여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훈 Nov 25. 2024

거대한 자유

2024. 11. 25.

'북한인권법 제정 촉구 유권자 운동 출정식'에서 전시된 북한의 공개처형 그림

우리나라는 가까운 중국이나 러시아만큼, 아니 더욱 가까운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가 보장된 국가이다. 우리는 국가 권력자를 비판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판을 잘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가며 후원한다. 그러나 북한,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국가들은 전 세계에 수없이 많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 욕을 하면 남산으로 끌려 들어가 반병신이 되어 나오는 일이 현재 진행형으로 실행 중인 국가들인 셈이다.


자유가 없는 국가에 살고 있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유를 기꺼이 양도해야 한다. 사상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 모두가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가치관만을 남긴다. 불순한 사상이라며 검열하지만 사상의 불순함이 아니다. 권력이 무너질 것을 두려워하는 악인들의 몸부림이다. 


민주주의는 반대 의견과 표현의 자유 위에 완성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될 끔찍한 생각이라도 우리는 그 생각 자체를 막아선 안된다. 전체주의적 사상은 검열된 하나의 사상을 결과적으로 요구하며, 그 안에서 모두가 하나의 생각으로 길들여진 인간으로 만드는데 힘쓴다. 


좋은 사회는 사회가 모두 하나의 마음으로 하나의 행동만을 하는 사회가 아니다. 서로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고, 때로는 의견과 의견의 대립이 선명해 갈등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추상적인 의견은 구체적인 의견이 되고, 구체적인 의견은 실제적 결과물을 요구한다. 아무리 언론을 조작하여 시간을 벌고, 선동을 할 순 있어도 민생을 구제하지 못하면 결국 정권은 바뀐다. 무너진 정권은 무너진 참상만큼 다음 정권에 힘을 몰아준다. 아무리 정치가 똑같은 놈들이 서로 싸움박질하는 곳이라곤 하지만 싸우지 않고 모두가 100% 찬성을 던지는 세상은 더욱 두렵다. 


하나의 의견만을 말하는 중국 공산당의 거수 투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정의는 다수결로 정의된다. 우리가 법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내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감옥으로 보내거나 내 재산을 빼앗거나.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양도된 권력 위에서 발생한다. 사람들은 권력자를 두려워 하지만 권력자를 두렵게 하는 존재는 자유롭게 그들의 치부를 이야기하고, 문제점을 고발하는 시민들에게서 나온다. 


자유는 그런 것이다. 때로는 허락된 자유가 타인의 권리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완전히 지켜줄 방패는 없다. 방패로 가슴을 막는다면 등이나 다리가 보호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도 그러하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끝없는 자유는 자유의 부작용 역시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부작용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과장하여 말한다. 그러나 자유를 택함으로 얻는 단점보다 자유를 택함으로 얻은 존엄성이 더욱 크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은 정의의 영역이 아니라 선과 악의 영역도 아니다. 우리가 가진 시스템의 한계와 서로의 믿음의 영역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고문실

감옥에서 살면서 내 삶을 모조리 감시당하는 것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감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대통령 욕을 하면 고문실로 끌려가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대통령이 무조건 맞지 뭐 하러 대통령 욕을 해?" 하며 욕을 한 사람을 비난하는 인물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사고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자신의 자녀와 아내, 남편이 무심코 한 욕으로 장애를 얻게 됐다면,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까지도 잡아가서 검열했던 과거를 생각해 본다면, 통제되지 않은 권력은 보호받지 못한 인간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힘을 가지게 된다.


중국에서는 공산당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경우, 진급 및 공직 사회에서는 철저한 배제, 공안이 찾아와 조사를 하는 온갖 압박이 가해진다고 한다. 북한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미디어, 드라마를 시청한 청소년을 총살시키는 국가이다. 자유가 빼앗긴 국가는 통제 안 되는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바탕으로 사람을 파리 죽이듯 뭉게 버린다. 조금이라도 국가에 위협이 되는 사람과 그의 가족, 친척, 형제, 자식들까지 모조리.


성경의 예수는 마태복음서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죽여도 영혼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5.18 당시 구타를 당하는 시민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온 것은 몸은 죽을지라도 그들이 남긴 무형의 유산의 덕이다. 자유는 핏값으로 얻어낸 것이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투쟁해 얻어 낸 것이다. 검열을 원하는 이들은 자유의 부작용으로 나오는 것들을 거대하게 묘사하지만 자유가 부재한 국가가 만들어 내는 범죄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이다. 북한의 김 씨 일가의 죄를 법원에 세우면 형량이 얼마가 나와야 하겠는가? 유태인을 그렇게 많이 죽인 히틀러의 형량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들을 고문하다 죽인 수많은 고문기술자들의 형량은 얼마가 되어야 하는가?


세상엔 선명한 의도 악도 없이 모두 포장된 악과 포장된 의에 가깝겠지만,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대의 누렸던 삶보다 나은 삶을 누리며 풍요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가로 우리는 시대를 판단한다. 내가 정한 길은 자유의 편이다. 자유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정답이고, 의로움이기 때문에 자유를 택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자유의 편에 선 것은, 자유를 빼앗는 이들보다 더 나은 세상을 약자들에게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