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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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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훈 Nov 27. 2024

눈이 내린다

2024. 11. 27.


Sway, Sway · Heinali

오늘은 눈이 펑펑 내렸다. 얼마 만에 느껴본 추위인지. 오래간만에 입은 롱패딩을 마지막으로 입은 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우산으로 눈을 피한다. 처마에 쌓이는 것처럼 우산 끝에 눈덩이가 맺힌다. 툭 하고 떨어지고 나니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에서 본 눈 오는 장면은 예뻤다. 눈 속에 있을 때는 피하기 바빠 보지 못했던 눈을 처마 아래서 보고 있노라니, 참 예뻤다.


멈춰 서서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들이 가득했다. 아름다운 기억들도 많았다. 지나고 보니 그랬다. 눈 속을 헤집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아름다웠다. 눈 속에서 영원히 있을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겨울은 지나 있었다.


인생의 두 번째 봄날이 찾아온다면 어떨까. 더 이상 꽃을 맺지 못할 것 같던 죽은 나무에서 꽃이 차오른다면 어떨까. 죽은 나무 같은 영혼에서 꽃이 피어난다면 그 영혼의 모습은 어떨까. 아름다울 것이다. 새 생명이 탄생한 순간처럼, 죽은 자가 돌아왔으니 모두가 놀랄 것이다. 어찌 살아 돌아왔을까 하며.


죽음의 강을 건너 돌아온 나사로의 눈에는 다시금 세상의 밝은 빛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삶의 이후에 있는 고요한 스올에서의 나날을 그리워할까. 아니면 다시 살아난 것에 감사하여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삶으로 남은 인생을 채웠을까.


눈이 내리니 평소엔 보이지 않던 이들이 하나 둘 나와 길을 쓸었다. 눈을 밀어내고, 머리에 하얗게 쌓인 눈을 털어낸다. 어린 시절처럼 웃기도 하고, 때로는 바보처럼 미끌거리며 휘청인다. 그 모습을 보고 서로가 즐거워한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땐 마냥 좋았는데. 이 새하얀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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