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ChatGPT가 나온 이후, GenAI는 눈부신 발전을 했고, 적어도 대학교육에 많이 침투했다. 전통적인 교육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많진 않은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대학 수준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공포라는 감정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본다고 생각하자. Gemini에 넣어보았다. "공포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초기 설정이나 초안을 쓴다면 어떤 제안을 해보겠어요?"라고 프롬프트를 넣었다. Gemini는 주인공은 감정이입이 가능한 평범한 사람이어야 하고, 비정상적인 공포 상황에 닥쳤을 때 독자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치명적인 약점/결함을 부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포의 대상을 정의해야 하고, 공포의 대상(괴물, 귀신, 저주 등)은 자세히 설명하면 안 된다라고 한다.
프롬프트로 첫 번째로 만들어내는 AI의 답은 역시나 평균적이고, 예상가능한 구조다. 그러나 시대를 관통하는 역작, 200년이 지나도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읽는 소설은 Gemini가 제안한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다. 1817년 언저리에 바이런의 별장에서 있는 와중, 퍼시 셀리, 클레어 클레어몬트랑 같이 비가 내리는 지루한 일상을 타파하자는 계기로, 공포소설을 써보자고 이야기가 나왔고, 메리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영감이 나오지 않아 괴로워하다, 소설을 하나 쓰게 쓴다. Walking dream이라는 소설이고, 지금은 프랑켄슈타인으로 알려진 소설이다. 무려 200년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최초의 SF 소설이고, 단순히 공상소설로만 분석될 것이 아닌 많은 질문을 담고 있는 소설로 지금까지 사랑받아 연극으로도, 최근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소설의 독창성을 말할 수 있겠지만, '공포'라는 화두를 가지고, '과학기술로 만들어진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과 동시에 버림받고, 그 버림받음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사회에 동화되고자 했으나, 자신의 외모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는 고통과 고독', 이 원초적인 감정을 뽑아내는 것. 평균적인 지식과 사유를 뛰어넘은 소재의 발굴이고, 이는 메리 셸리가 겪어온 삶의 여정 덕분에 위대한 소설로 남을 수 있어, 현재까지도 많은 화두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대학에서의 수학교육은 정의를 소개하고, 증명을 하고, 예제를 풀며 나아가며, 과제로 연습문제를 풀어가며 자신의 지식을 체크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다. 참고로 이런 구성의 교육은 한 70년 전에 자리 잡은 시스템으로, 과거에는 연습문제도 없이 본문의 행간을 이해하며, 자신만의 예제를 만들어나가며 읽어나갔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보편화와 공학의 발전으로 구체적인 연습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했고, 이를 통해 현재와 같은 교육방법이 자리 잡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탄생은 이 교육체계의 근간을 흔들어버리고 있다. 연습문제를 통해 학생을 평가할 방법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즉, 숙제를 통한 지식 확인 및 숙련도 평가라는 교육시스템의 근간이 흔들어진 상태다.
그럼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젠 AI를 사용하는 것은 항상 가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천봉쇄하는 것은 시대를 역행하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악영향은 있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최대한 활용하되, 후속세대가 더 나은 발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교육이 해야 할 목표다. Gen AI는 사실상 새로운 시대의 검색도구다. 프랑스어, 러시아어로 작성된 문서를 과거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고, 수업을 준비하는 면에서, 내가 잘 몰랐던 역사적 상식을 빠르게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학생들에게 더 감명 깊은 강의를 준비할 수도 있다. 논문을 작성하면서도, 다른 논문을 공부할 때, Gen AI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자 하고, 정말 기초적이라서 질문하기도 무서운 부분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지식의 공백을 막아준다. 이런 장점이 있는데도 과거의 시스템만 고수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컴퓨터가 학생을 망친다고 계산기 시대로 돌아가는 시험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메리 셸리는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던 걸까? 메리는 과거 개방적인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많은 서재의 책을 탐독하며 문학과 과학을 공부하며 많은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지적토양이 있었으며, 당시에 18세기 후반에 유행한 갈바니즘(Galvanism)을 듣고 영감을 받아 소설을 쓸 수 있었다. 갈바니가 전기를 이용해 죽은 동물의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실험을 성공시키면서,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을 위해 전기로 생명을 만들어내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남편 퍼시 셸리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소설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1800년에는 여성의 지위가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출간하는 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지지할 수 있는 사람의 존재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큰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
그럼 대학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학생들을 보다 더욱 신경 쓰고, 학생을 단순히 평가의 대상으로만 보는 관점을 지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 중, 특히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학생들이 새로운 관점을 익힐 수 있을지, 보다 더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집중(attention)을 해주는 게 더 필요한 시대다. 단순히 AI를 사용해서 답만 구하고 성적을 구하려는 학생은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야 한다. 만약에 수업에서 알려주지 않는 지식을 쓸 경우에는 엄벌에 처하고, 자신의 답안을 더 완벽하게 쓰기 위해 AI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고 하는 태도까지 막으면 안 된다.
다만 현실적인 문제로, 기초 수학과목의 경우, 이 과목이 흔들리면 다른 이공계 수업을 소화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를 위해서 기초과목에 한해서는 주기적인 과제문제 해결, 수기작성을 통해 기초체력을 기르는 작업과 더불어, 퀴즈를 통한 평가로 체제를 바꿀 필요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 과정에서 Ai는 반복학습을 돕고, 강사는 절약된 시간을 바탕으로 어디 부분에서 막히는지 맞춤으로 지도하는 것. 이게 앞으로 10년의 대학교육에서 향해야 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더 담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수업으로 방향성을 잡되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도 놓치면 안된다. 잘 가르친다고 좋은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에 따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미국 대학에서 학생들이 결석을 하는 경우가 워낙 많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대학은 지식의 단순한 전달이 아닌, 새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적토양을 다져주는 역할에 보다 더 신경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