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햄릿의 스토리가 정말 가물가물하다. 아마 옛날에는 읽어야 한다고 하니, 만화로 보는 셰익스피어나 집에 있는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의 몇 선을 보고 더 안 봤던 것 같다. 그걸 가지고 누구랑 토론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그걸 소화할 수 있는 근육도 없었다. 집 앞에 있던 Avon Cinema의 존재를 알고 있던 건 오래되었지만, 즐겨보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간 멀티플렉스에서 볼 수 있던 영화들에 싫증이 나던 와중, 독립영화관이 가까이 있다는 게 소중해서 종종 보러 갔었다. 감상문을 남길정도로 좋았던 영화들도 있었지만, 막상 브런치에 글로 저장만 할 뿐, 글을 쓸 생각까지 안 한건 지금 벌써 8개가 넘는다. 뮤지컬 쉐도우, 연극 프랑켄슈타인, 이것도 언젠가 써야 하는데, 연극 GOOD 이것도 써야 하는데, 영화 Sentimental value, 이것도 정말 인상 깊었었는데... 무엇인가 하나씩 엇나가서 결과적으로 쓸 타이밍을 놓쳤고, 쓸 생각은 점점 사라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Hamnet이라는 제목이 끌렸다. 그 영화관에서 예고편을 보는데, 자연을 다루는 색상이 마음에 들었고, 여주인공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남자가 기뻐하는 모습에 마음에 들어서, 상영이 되면 봐야겠다고 결심은 했었다. Hamnet이란 제목과 Hamlet이란 명작의 이름이 유사해서 혹시 셰익스피어에 관한 것인가 싶었는데, 검색해 보니 그렇더라. 서양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셰익스피어에 관한 영화라고 하니 더 관심이 생겼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보고 왔고, 크리스마스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알고 보니 Avon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랫퍼드에 흐르는 강 이름이라고 하니, 묘하다.
Hamnet은 매기 오'패럴이 희곡수업을 듣던 와중, 셰익스피어의 아들의 이름이 Hamnet이고, Hamnet이 11살에 세상을 떠난 후, 5년 후에 시대의 명작 Hamlet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400년 전에는 개인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고, 셰익스피어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사생활이 있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런 공백을 합리적인 상상으로 인간적인 상상으로 잘 묘사한 게 이 소설이라고 한다. 더불어 그때는 Hamlet과 Hamnet이라는 단어가 거의 혼용되었다고 하니, "Hamlet의 탄생에는 Hamnet의 죽음에서 온 극복이 아니었을까?"라는 가설로 쓰인 훌륭한 작품이다.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물론 소설과 역사는 좀 다르다고 하는데, 이런 개연성 있는 전개면 어떠한가. 부부가 야반도주했다는 썰 등등...
그 감성을 영화로 옮긴 것이 이번에 내가 본 Chloe Zhao의 영화다. 애그네스(공식 이름은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이라고 하나 유언에는 애그네스라고 명시되어 있기에, 실제로 불리는 이름은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자연과 깊은 교감을 하는 사람으로 극에서 등장한다. 매를 불러내고, 숲에 있는 약초를 캐며 생활한다. 사람들은 애그네스를 마녀라고 부른다.
극에서 윌리엄은 애그네스의 묘한 매력에 빠져들며, 아그네스에게 다가간다. 윌리엄은 가족으로부터 많은 무시를 받고 살아간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생계를 벌고 있지만, 장갑을 만드는 업을 하는 가족으로부터 많은 무시를 받고 살아간다. 그런 와중에 애그네스를 만났다. 애그네스는 극에서 윌리엄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맛깔나게 설명하는 그의 언어의 마법에 끌리고, 윌리엄은 자연과 교감하는 신비함의 그녀에게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첫째 딸을 윌리엄이 자고 있는 도중, 숲에 가서 자기가 항상 자던 나무에서 낳는 모습은 그가 매우 신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윌리엄은 밤마다 작품을 쓰려고 하지만, 집중을 하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는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더 큰 근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한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현실적인 벽에 대한 걱정도 늘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애그네스는 윌리엄 안에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며, 런던으로 가서 뜻한 바를 이루라고 보낸다. 그 와중에 애그네스는 윌리엄이 또 없는 순간에 집에서 쌍둥이를 낳는다. 이 때는 자연에서 낳지 못하게 친정어머니가 막고 윌리엄이 태어난 침실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것도 특이한 포인트다. 윌리엄에게 그 집은 지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윌리엄은 런던과 스트랫퍼드를 오가며 극작가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사랑스러운 아이 셋의 아버지이자, 항상 자기를 지혜롭게 지지해 준 아내에게 애정을 붓는 모습이 나온다. 아들 햄넷의 말동무가 되며 햄넷에게 물어본다. "너는 만약 무대에 선다면 어떤 모습이 나왔으면 좋겠어?"라고 하니 "칼을 싸우며 이기는 모습이 나오고 싶다."라고 말을 했다.
극작가로 런던에서 이름을 서서히 알리고 있던 윌리엄은 또다시 시간이 지나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야 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 햄넷과 잘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계속 "Bye"를 말한다. 이 순간이 그 둘을 가르는 마지막 순간일 줄은 그땐 알 수 없었을 거다. 그리고 극에서 흑사병에 대한 그림자극이 나오며 불길한 느낌을 자극한다.
가장 연약한 주디스, 막내딸이 흑사병에 걸린 거다. 애그네스는 어떻게든 구해보려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혜를 동원하며 아이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을 기세는 안 보였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러나 햄넷이 쌍둥이 동생의 고통을 보며 "죽음의 신을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하며 등을 돌리라고 하고, 자기랑 같은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그 병은 햄넷에게 옮겨가고 주디스는 나으며, 죽음은 햄넷에게 닥친다. 윌리엄은 집에 달려가나, 이미 자신의 아들 햄넷은 세상을 떠나버렸다.
애그네스는 지쳤다. 항상 힘든 순간에 자신의 남편은 런던에 있었고, 런던에서 연극을 만든다는 것만 알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항상 믿고 지지한 건 아그네스였다. 그런 와중에 남편은 또 런던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극도로 화가 끌어 오르는 모습을 방출하며, 아내를 품어주려고 하지만, 애그네스는 참아왔던 통곡과 분노를 쏟아낸다. 아이를 잃어버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고,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전염병이 하필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를 뺏어갔는데, 윌리엄은 그에 대한 생각이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윌리엄은 집으로 돈을 계속 보내, 이제 자기가 지옥으로 생각했던 그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집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애그네스는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남편이 자기 아들의 이름으로 연극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런던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남편이 런던에서 지냈던 환경을 본다. 호화로운 생활이 아닌, 침대 하나랑 책상이 있는 다락방에서 생활을 했다는 것을 그때 알았고, 그의 작품이 올라가는 극장을 보자마자 웅장함에 압도된다.
그리고 다른 시간이 회상이 된다. 윌리엄은 절벽 위에서 햄릿의 명대사를 읊는다. "To be or not to be, that's the question". 이 문장을 이 맥락에서 보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기가 사랑했던 아이를 잃어버린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하며, 그 슬픔을 자신의 방식으로 승화하려던 약한 인간, 윌리엄이 나왔기 때문이다.
윌리엄이 햄릿의 왕의 유령으로 분장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얀 분을 얼굴에 바르며 무대 위로 나타난다. 아주 신기했던 것은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에서 실제로 왕의 유령으로 연기했다는 것이다. 햄릿이 등장하자마자 아그네스는 이성을 잠시 잃는다. 그 분장이 자기 아이랑 너무 똑같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내 아이를 가지고 무대 위에 올릴 수 있냐는 극도의 분노를 표현하고, 무대 앞으로 달려 나간다.
윌리엄은 유령으로 아들에게 말을 건넨다. 아들은 극에서 마지막에 죽지만, 자기는 죽은 상태로 햄넷에게 말을 건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과 똑 닮은 배우에게. 매일 무대 위에서 매일 같이 자기가 사랑했던 아들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서 애그네스의 표정이 조금씩 바뀐다. 그리고 햄릿은 앞에 Hamnet이 그리 원했던 칼싸움을 하는 모습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고, 그 유명한 명대사를 읊는다. 아그네스는 그 대사가 끝나자 손을 햄릿에게 내밀고, 자기 말고도 많은 청중들이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남편은 자기의 방식으로 자식을 마음속에 묻어가며,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때 애그네스의 표정, 그리고 죽은 햄넷, 그리고 윌리엄의 얼굴이 조명되며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가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제시 버클리의 눈빛연기. 그리고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절제된 연출로 자연스럽게 윌리엄과 애그네스가 어떤 감정선으로 아이의 죽음을 이겨나가고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 좋았다. 자연 속에 있으면서 힘을 얻는 애그네스의 모습, 자연스러운 이미지 병치. 더불어 아무 단서도 없이 역사 속에 존재했던 인물로 박제되어 있는 셰익스피어가 햄닛을 쓰게 된 데에는, 셰익스피어의 시련을 작품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상상력이 좋았다. 원작은 설명하는 파트가 너무 길어서 장황하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걸 표정과 공기만으로 전달한 연출이 내 취향에 맞았다.
애그네스는 윌리엄을 처음 만났을 때 빨간 옷으로 만났다. 그리고 윌리엄을 만날 때면 항상 빨간 옷을 입었다. 윌리엄이 없었을 때는 다른 옷을 입었다. 마지막에 윌리엄의 연극을 보러 올 때도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빨간 옷을 입고 나타난다. 애그네스가 윌리엄을 항상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랑한다는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더불어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잘 보면, 여자 주인공들이 매우 현명한 사람들로 나온다. 아마도 아내가 투영이 된 것이 아닐까 짐작을 했는데, 그런 걸 이 작품에서 훌륭하게 잘 묘사해 애그네스가 윌리엄에게 어떤 의미의 사람인지도 묘사가 잘 된 것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실제 역사에서 윌리엄은 유언장에 애그네스에게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남긴다'라고 남겼는데, 사실 첫 번째로 좋은 침대는 손님에게 주는 문화가 있었고, 자신과 함께했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떠난다는 걸 표현한 셰익스피어 다운 문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역사적으로 기여를 했어도 이름이 지워졌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이건 상상에 불과하지만, 400년이 지나도 셰익스피어의 아내는 누군지 기록에 남겨져있고 항상 아내는 고향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지켰다고 한다. 역사 속에 그 이름이 남을 수 있도록 윌리엄이 머리를 쓴 게 아니었을까. 왕으로부터 찬사를 받고, 셰익스피어는 은퇴 후 젠틀맨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며 생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던 좋은 영화를 크리스마스이브에 봤고, 머릿속에 계속 맴돌다가 글을 다 써 내려가니 마음이 시원하다. 이래서 극장에 가는 것 같다.
조만간 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한 햄릿을 보며, 그의 작품을 한번 새롭게 음미하는 순간을 경험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