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Next to normal 시청 후기

정상가족의 허상이란 직면을 통해 치유해나가는 우리 마음

by Will

언제부터인가 유튜브의 추천링크로 Next to normal의 Light가 떴다.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아서 기억에 남았던 곡이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을 볼만한 기회가 전혀 없었는데, 내가 구독하고 있는 서비스였던 The Theater Live에 2024년에 찍었던 촬영본이 올라와서 올해가 가기 전에 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내년 6월이면 내가 있는 곳에서 공연을 하기 때문에 보지 않아도 언젠가 볼 기회가 있었긴 했지만, 게이브 역할에 잭 울피가 연기한다는 걸 보고, <하데스타운>에서 오르페우스의 주연을 젊은 나이에 꿰차서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었기에, 이번 기회에 보게 되었다.


내가 시청한 버전은 West End 버전이며 Broadway 버전은 아니다. 연기한 사람들은 Diana 역에 Caissie Levy, Nataline역에 Eleanor Worthington-Cox, Gabe역에는 Jack Wolfe, Dan 역에는 Jamie Parker였다.


올해봤던 수많은 뮤지컬, 연극, 영화들이 있었지만, 올해 본 뮤지컬 중에서 최고의 뮤지컬이었고 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는지 알 법하다.


언제 이 글을 다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줄거리는 다 빼버리고 내가 왜 이 작품을 좋아했는지를 써보려고 한다.


나는 작품을 볼 때, 인물의 사실성을 많이 본다. 인물의 행동들이 이해가 될 만한 부분들이 있고, 현실적으로 느껴지는가. 이걸 매우 중요하게 본다. 그리고 개연성도 많이 보고, 말미에 왜 인물이 저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불어서 그 끝에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고, 치유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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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의 처음만 봤을 때 다이애나의 격렬한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이는 약물치료의 부작용이었고, 아이를 잃은 슬픔을 제때 그 사람에게 맞게 다루지 못한 탓에 16년간 마음속의 병을 키워온 것이었다. 과하게 활동적일 때도 있으며 나탈리가 자기 남자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하지 않고 싶었으나, 아빠는 정상가족임을 보이고 싶은 모습에 나탈린의 남자친구를 집 안에 들여보낸다. 당연히 나탈리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나타나고, 남자친구가 그를 위로해준다. 남자친구는 ADHD 문제때문에 치료용 마약을 한다고는 하지만, 사과에다가 마리화나 넣는것 보면 얘도 그렇게 소위 말하는 정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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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린은 레드불을 마시며 새벽 3시까지 공부에 매진하고, 클래식 피아노를 치며,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하며 산다. 왜 저런 강박적 사고를 가지게 되었을까 싶었지만, 엄마는 정신분열로 죽은 아들 게이브를 16년이나 동행하며 집에서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인데, 나탈린이 할 수 있던게 무엇일까? 자기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고, 끔찍한 집에서 도피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아빠는 아내의 치료때문에 나탈린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마음에 병이 생겼던 것 같다. 그가 가족에서 존재감을 가지려면 할 수 있는 방법이 공부뿐 아니었을까? 클래식 피아노를 왜 치고 싶어했을까? 즉흥연주가 없고, 주어진 것에 정확하게 연주하면 된다는 점. 집에서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에서부터 벗어나 그것과 정반대에 집착하게 되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이 두 개라도 있어야 자기를 지탱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하는게 자기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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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처음에 나온 게이브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이애나가 18살 케이크를 들고나올때 가족들의 반응에서부터 이게 잘못되었구나는걸 깨달았고, 16년간 정신분열이 있었다는 걸 보아 아주 어린 나이에 아이가 죽었다는걸 추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게이브는 18세 청소년으로 나왔던거였을까? 남편이 전기충격요법을 사용해서 치료하는 것을 동의하는 걸로 보아, 아이를 잃었을 때 충분히 슬퍼하지 못하고, 묻어갔기 때문에. 그리고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아이를 낳기로 둘이 결심했을 때. 여기서부터 모든게 망가지기 시작한 징조였던 것이다. 남편이 충분한 정서적인 지지를 못했고, 게이브가 생겨났을 때 지워야 할 대상이었지, 이를 어떻게 보듬어야할지 남편은 몰랐고, 남편 자신도 게이브를 지워내려고 했지, 그 슬픔을 온전히 품고 갈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 틈을 게이브가 채워갔고, 게이브는 다이애나 속에서 자라난 제 2의 인격이 되버렸던 것이다. 자기를 위로해줄 수 있고, 자기를 항상 지지해주는 정서적 동반자 수준으로.


아마도 남편도 그 슬픔에 잠겼다가는 가족이 무너질거라고 생각했었던거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기의 슬픔을 온전히 흘려보내지 못해 곪아버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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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충격요법을 한 이후로 2막이 시작된다. 다이애나는 결혼한 것도 사실 기억을 잃을 정도로 18년간의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자기가 딸을 낳았는지도 기억못하고, 다이애나는 혼란스러워한다. 기억을 하나씩 되찾아가는데 안 좋은 기억부터 되찾기 시작하다가, 자기가 아들이 있었다는 것조차 몰라 혼란스러워 했다. 다시 게이브가 머리속에서 살아나기 시작할 시점에, 다이애나는 댄에게 분노한다. 도대체 내 아들의 이름이 뭐냐고. 그러나 댄은 절대로 말하지 않으며,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정상이란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실체인데.


그러나 말미에 가면 왜 이들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나온다. 8개월밖에 안 된 아이를 잃었고, 둘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어떻게 할 줄 몰랐고, 병원 의사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못했고. 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 죄책감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치료를 했지만, 테라피스트는 메뉴얼이란 이름으로 진정한 위로를 하지도 못한채 6개월 후부터 약물치료를 시작하여 다이애나에게 필요한 충분한 슬픔을 보낼 수 있는 위로와 여유를 주지 못했고, 가족 누구에게도 그런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댄도 마찬가지다. 댄도 아마 성역할때문에 슬퍼하지 못하고 가족을 지키는데만 신경썼기 때문이다.


2막에서는 나탈리가 남자친구를 밀쳐내는 장면들이 계속 나온다. 남자친구를 사랑하지만, 자기의 엄마를 보면서, 언젠가 남자친구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생각에 자기가 스스로 멀어지기로 선택한거다. 둘은 댄스 데이트를 하러 가기로 했지만, 나탈리의 집으로 찾아간 남자친구가 다시 엄마가 심해진 것을 보고, 나탈리는 밀어내려고 하나 남자친구는 나탈리를 온전히 품어준다. 그 자체로. 여기서부터가 작품의 치유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딸은 엄마에게 처음으로 16년만에 자기에게 집중해줬다고, 매우 당황스러워 하면서 화를 내지만 그 말을 너무나도 기다렸던 나머지 서로를 안기며 운다.


게이브는 다이애나에게 망상 그 이상의 존재, 자기가 생각했던 이상이었고, 자기를 지켜내기 위한 존재였다. 그걸 서서히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댄은 게이브의 존재를 부정해왔으나, 다이애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격리치료를 자원하기 시작하면서, 댄은 자기 마음속에서도 아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모든 주인공들이 완벽함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있는대로 품어가며 위로를 한다. 그리고 Light 라는 넘버가 나오며 아빠와 딸, 모든 사람이 완벽하진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슬픔, 자기 자신을 품고 나아겠다는 선언과 함께, 아빠가 테라피스트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으며 극이 끝난다.


어짜피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다 엉망이고, 엉망과 엉망이 서로 품어 살아가는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걸 이 작품이 잘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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