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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ice & like sun ①

[토닥토닥-9] 2025년 8월 7일 목요일

by LYJ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었지만 잊고 있던 기억이 불현듯 올라오는 순간이 있다. 어떤 의식의 흐름 때문인지는 모른다. 그저 번쩍하고 머리에 떠오르는 과거의 말, 행동, 냄새, 색깔 등이 고스란히 가슴에 박히는 그런 순간.


2016년 미국 어학원 수업에서 첫 번째 작문 과제는 "like~~"였고, 고민 없이 아이들의 성격을 소재로 쓴 과제를 보고 강사는 흥미로웠다며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었다. 큰 아이의 독일 생활을 엿보다가 그때 썼던 그 작문의 내용이 떠올랐다.


큰 아이의 성격은 매우 간결하고 깔끔하다. 지난 것에 대한 후회가 별로 없는 아이다. 최선을 다해보고 안 되는 것은 깔끔하게 털어낸다. 그래서, 차갑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알면서도 가끔씩 아이의 서늘함에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친구 관계가 순조로운 게 맞는지 걱정하기도 한다. 친구가 아주 많은 걸 알면서도 말이다. 간결한 성품은 부러운 부분이어서 나도 좀 배웠으면 싶지만, 그런 건 배워지지 않는다. 생긴 그대로 잘 사는 게 답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좀 과장되게 얼음 같은 아이라고 표현했었다.


2025년 얼음 같은 큰 아이의 교환학생 생활은 순조롭게 치열하다. 내게 공유된 달력에 기록된 하루하루는 빈틈없이 빼곡하다.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교환학생 신분을 얻으려 노력했던 이유는 "놀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하루라도 젊을 때 더 놀아야 한다던 아이의 실제 생활은 노는 것 없이 차곡차곡 치열하다.

무언가 시작하고 끝내는 날짜가, 과목별 발표 날과 그걸 준비하는 내용이, 독일 학생들과의 팀플 회의와 같이 간 친구들과 하는 공부 시간이, 특강 같은 비정기적 수업과 비싼 보험에 공짜로 포함된 예방주사를 위한 병원예약 날짜, 그 와중에 찾아낸 학교 근처 힐댄스 학원, 어렵지만 흥미롭고 고급지다는 수업 교재 읽기와 최근에 관심이 생겨 시작하게 된 괴테까지.

"독일 성적은 반영 안 한대. 지난 학기 성적으로 1년 동안 장학금 받을 수 있어. 성적 부담이 없어. 꿀이지?" 하던 아이는 모든 틈을 공부로 채우고 있다.


2016년 "like ice"라고 제목 붙여 묘사했던 16살의 아이는 지금, 극강의 뜨거움으로 들끓고 있는 중이다.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밑바닥에 있는 용암 같은 열정을 기꺼이 꺼내 쓰는 것처럼 보인다.

매 순간 집중하고 에너지를 모으는 아이의 차가운 판단력이 절절 끓는 실행력과 만나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엮어 내고 있다.


아이의 치열함이 마치 태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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