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4] 2025년 4월 30일 수요일
지난 일요일은 작은 딸의 생일이었다. 체육대회로 일찍 끝난 금요일, 봄을 닮은 아이를 위해 프리지어를 사서 같은 색깔의 큰 컵에 꽂아 책상에 올려두었는데 너무 바빠 주말에 오지 못한다는 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눈부신 계절에 세상에 나온 작은 딸은 생일이 매번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당일에 친구들과 놀지 못해 서운해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생인 지금도 중간고사, 중간 보고서, 중간 소설을 쓰느라 그렇게 좋아하는 집에 오지 못하게 됐다. 마음이 쓰여 책상에 올려둔 꽃을 찍어 학교 바로 앞 카페 상품권과 함께 톡을 보내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고, 꽃은 거실로 옮겨두었다.
오늘은 사무실이 아닌 곳으로 출장을 가는 날이라 여유로운 아침이다. 침대를 벗어나 휴대폰을 확인하니 지난 새벽 작은 아이에게 온 문자가 한가득이다.
집에 너무 오고 싶고, 글을 쓰기 싫고, 춤 동아리 공연연습도, 수업으로 듣는 실용무용 수업도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고, 어느 쪽도 제대로 못하는 스스로가 너무 싫고, 기쁜 일은 없고 나쁜 일만 계속 일어나고, 친구들한테 하소연할 시간조차 없이 아침부터 새벽까지 계속 일을 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걱정시켜서 미안한데 엄마한테 말하니까 좀 낫다고...
역시, 막내는 막내다. 뭐든지 잘 하고 싶고, 실제로는 잘 해내면서도 아이는 징징거림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게 매력이다.
작은 아이는 학교를 온전히 다녀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5학년 2학기부터 1년의 미국 생활 후 복학해서 6개월 만에 중학생이 되었고, 중3 때는 코로나로 학교에 거의 가지 않았으며, 고등학교는 1학년 12월 초에 자퇴를 했다. 지금은 제 나이보다 1년 일찍 대학생이 되어 2년 1학기를 계속 학교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다.
좀 쉴 때가 되었지 싶다.
마침 출장 업무가 일찍 끝났다.
집에 오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집이 좋은 반 이상의 이유가 엄마의 존재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짧게라도 나를 보고 나면 집에 올 수 있는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겠지 싶어 아이의 학교로 차를 몰았다.
학교에 왔음을 알리지 않고 전화를 걸어 글을 쓰고 있다는 카페를 찾아 들어가 아이의 어깨를 감쌌다.
놀라는 얼굴이 재밌다.
내 허리를 감싸고 얼굴을 묻는 아이에게 맘껏 징징거릴 기회를 주고, 커피 한잔과 간식을 먹으며 짧은 대화를 하고 일어났다. 위로가 되었다는 아이의 말이 아니라 딸의 우울함을 직접 보고 달랠 수 있어서 안심이 된다.
본인은 힘들다고 느낄지언정 내 눈에는 그것마저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것을 보니 피곤함이 사라진다.
한 달 전 큰아이를 독일로 보낸 날, 벌써 쓸쓸하다는 내 말에 "내가 있잖아"라고 작은 아이가 말했을 때 나는 "너가 있다고 언니의 부재가 대체되는 건 아니란다"라고 대답했었다.
직항으로도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가야 도달할 수 있어 살아가는 시간마저도 엇박자인 곳에서 큰아이가 잘 지내고 있다는 다행함으로는,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서 나와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작은 아이의 우여곡절 때문에 올라오는 걱정과 안쓰러움이 덮어지지 않는다.
새끼는 어떤 형태로든 "대체 불가"다.
프리지어 봉오리가 활짝 피어나고 있다. 작은 딸을 닮은 예쁜 꽃이 웃는다. 봄이 웃는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