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3]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큰 딸은 독일로 작은 딸은 기숙사로 그렇게 혼자의 삶이 시작됐다.
초과근무 후 늦게 퇴근하는 날엔 현관으로 들어서며 '어 아직 안 들어왔네'하는 생각과 동시에 '아 없지'하는 자각을 오차 없이 하면서 거실로 들어서는걸 열흘쯤 한 것 같다.
1년 유학 살림살이를 꾸리느라 거실로 쏟아져 나왔던 세간 중 짐가방에 담기지 못한 것들이 손길 닿았던 모습 그대로 어지럽게 남아 있다. 이런 게 눈에 들어온다는 건 텅 빈 집에 돌아오는 허전함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현관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쓸쓸함이, 내가 내는 소리 말고는 공간을 채울 방법이 없다는 고요함이,
조금은 해소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 토요일이고 해서 벌떡 일어나 계획에 없던 집정리를 시작했다.
아직은 채취가 남아있는 침대커버와 베개를 걷어 얼굴을 묻고 냄새를 깊게 마셔본다.
20년 전 아이의 목덜미에서 나던 젖비린내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세탁기를 돌리고는 끝내 딸에게 선택받지 못한 옷, 책 등 살림살이들을 이곳저곳의 제자리에 숨겨 정리하고 청소기를 한바탕 돌렸다. 세간살이가 많았던 큰 아이의 방이 갑자기 너무 좁아 보여 가구의 위치를 바꿔 방을 넓혔다. 깨끗한 침대커버를 씌우고 봉긋하게 쿠션이 살아있는 베개와 계절에 맞는 이불을 꺼내 호텔 침구처럼 이쁘게 정돈한다. 마침 들어오는 햇살에 마음이 산뜻하다.
그렇게 기분 좋은 주말을 보낸 후부터는 텅 빈 집에 들어오는 쓸쓸함보다는 낯선 곳에서도 금방 적응해 내는 아이의 씩씩함이 고맙고, 고요한 이 시간이 소중하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MBTI "아이(I)" 다.
또 한 번 자각하게 된다. 새끼는 존재하므로 의미이지만 존재 자체가 민폐였던 거다.
내가 쓸쓸함을 털어버리고, "나 혼자 산다"를 하는 사이, 딸은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다.
너무 이쁜 나라에서 너무나 싱그러운 아이가 웃는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