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도(愛道)] -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오후
오전 11시 40분 수술실에서 콜이 왔다. 핸드폰을 뺏기듯 맡기고 휠체어에 탔다. 멀쩡하던 몸이 휠체어에 앉는 순간 아프다. 몸이 점점 굳고 손발이 차가워진다. 수술 대기실 문이 열린다. 수술실용이라고 적혀 있는 휠체어로 바꿔 타고 신발을 갈아 신고 대기한다. 둘째와 통화를 못한 게 계속 맘에 걸린다. 내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을 두고 아이가 스스로 자책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술실에서 두 사람이 나와서 묻는다.
이름/생년월일/병명/어느쪽
어제 병원에 입원하면서부터 같은 걸 30번은 더 말한 거 같다. 입원실 배정, 기초 신체검사, 혈압/체온 체크, 검사, 주사, 수술 설명 등등 내 몸에 아주 작은 터치를 할 때마다, 나와 대화를 시작할 때마다 내게 물었었다. 오늘은 병실에서 휠체어에 타면서부터 수술대에 오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묻는다.
나는/OO1028/유방암/오른쪽
실수가 있으면 안 되니까 계속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나, 오른쪽 팔목에 채워 놓은 팔찌의 바코드를 찍어 눈으로 확인하면서 왜 또 말로 대답하게 하는지 그냥 곱게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너가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라고 각인시키고, 그러게 왜 유방암 환자가 되었냐고 질책하는 소리로 들려 기분이 좋지 않다.
수술실 문이 열린다. 20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의료진 수 때문인지 수술실이 생각보다 작게 보인다. 드라마에서 보면 4-5명이던데, 아니네. 차가울 것이라는 공간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는 다르게 따뜻하다. 탈의를 하고 수술대에 누웠다. 맨 살에 닿는 수술대도 역시 따뜻하다. 의료진들이 일사불란하게 본인 일을 한다. 다리를 묶고 머리에 뭔가 씌우고, 소독약을 바르며 자신들이 뭘 하는지 계속 나한테 말해준다. 알고 싶은데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하시는지 못 알아듣겠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있던 의사가 말한다. “수술 준비하는 건데 놀래실까 봐 말하면서 하는 겁니다. 못 알아들으셔도 괜찮아요” 배려가 참 따뜻하다. 산소 호흡기를 입에 얹으며 마스크가 꼭 맞지 않아도 괜찮다며 편하게 숨 쉬면 된다고 마취의사가 말해 준다.
숨을 한번 쉬었고, 기억이 없다.
(드라마에서 보면 잠들기 전에 인생이 스쳐가고,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던데 다 거짓말이다. 바로 잠들었다)
너무 더운 듯 따뜻한 바람이 분다. 통증이 느껴졌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느낌이다. 아~~~~ 수술이 끝났구나. 다시 잠이 들었다가 병실로 오면서 깼다. 이불을 들춰 몸의 이곳저곳을 살펴본다. 배액관이 없다. 역시 병변이 작고, 수술도 깨끗이 잘 된 모양이다. 목이 마르고 입도 마르고 가슴도 아프다. 쪼그라들었던 폐를 펴야 한다고 숨쉬기 운동을 시킨다. 또렷하지 않은 정신에도 아이들이 보고 싶다. 더듬더듬 휴대폰을 손에 쥐고, 느릿느릿 아이들에게 톡으로 말을 걸어본다. 잘 지내고 있노라고, 자기들 걱정은 하지 말라고, 수술 잘 되었다는 얘기 들었다고, 이제 다 잘 될 거라고, 이제 엄마는 엄마 생각만 하면 된다고 나를 안심시킨다.
이렇게 어른스러운 딸들인데... 걱정해도 된다고, 울어도 되고, 속상하다고 말해도 된다고 얘기해 줄걸 하는 후회가 온다. 왜 걱정하지 말라고 했을까? 나한테 마구 쏟아내고 안도하길 바랐는데 고작 하루 사이에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참 대견하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언니가 병실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수술 잘 됐대. 전이도 없고. 걱정 말고 푹 쉬어.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바로 얘기하고. 간다"
빨간 원피스. 역시 언니답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언니를 보니 좋다. 돌아온 것에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병문안은 화려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