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무드가 있고 감성이 있고 정서가 있는 사람
여느 때와 다름이 없는 주말 오후, 낮잠 자는 아이 옆에 누워 얼굴만 내 밀고 눈 내리는 창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평소 듣고 싶었던 음악 플리를 켜고, 낮잠 한숨 자고 싶어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오랜만에 음악이 주는 그 편안하고 포근함이 좋아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이런 음악을 작사 작곡하고 부르는 가수의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이 음악이 그들의 정서이고 그들의 감성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이 음악처럼 자기만의 무드가 있고 감성이 있고 정서가 있는 사람이고 싶어졌다. 이 음악을 들으면 나라는 사람이 떠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마음에 드는 노래였다. 그래서 나란 사람을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에 대한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10 때 나는 스마일소녀/예스걸/좋아 걸 등으로 불릴 만큼 거절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착한 콤플렉스에 바뼈 한 동안 허우적거렸다. 그러자 우연히 학교에서 미술치료를 받으면서 학교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아나 대립과 고립을 오고 가는 사회생활에 서는 착한 콤플렉스는 결국 나의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정신이 차려졌다. 나는 내가 착해야만 어른들이 예뻐하고 친구들이 좋아해 준다고 믿었다. 하지만 애정이 고파서 나의 불편함 감정을 억제하며 지냈는데 결국에는 매력을 감퇴시켜 애정을 상실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큰 충격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20대가 되고부터는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거북하게 느끼고, 나 하나도 안착해를 입으로 부인하고 굳이 굳이 착하게 바라봐주는 착한 마음을 거절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착하다는 말 대신 성숙되고/배려심 깊고/편안한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새삼 정성을 들어 나란 사람에 대해 정의해 주고 이야기해 준 사람들이 고맙다. 그렇게 20대 중반을 보내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잠시 동안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잊고 지냈다.
결혼 전까지는 나에 대한 관심이 70%였다면, 결혼하고는 50%로, 육아하면서는 30%으로 줄었다. 아직도 나의 주변 사람들은 나를 예전과 같이 평가해줄까 하는 자신 없는 질문도 던졌다. 한 때 나를 좋게 바라 봐주고 내 곁에 머물렀던 대다수의 사람들의 상당수가 지금 내 곁에 없다. 삶의 형태가 바뀌고 일상의 모습이 바뀌면서 곁에 머물고 교류하는 사람들의 부류는 조금씩 바뀌어 간다. 이걸 인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한 졌다.
서른셋, 다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걸까? 에 대한 질문에 내가 듣고 있는 이 음악처럼 자기만의 향기가 있고 생각이 있고 정서광 감정이 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답을 찾았다. 사람의 얼굴은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는 옛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꽤 믿는 편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주는 느낌과 풍기는 풍채는 다 제각각이다. 계 중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도 있고, 잠깐의 어울림만으로도 차마 닮을 가봐 어울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고, 나도 모르게 말 한마디 더 해보고 싶고 절로 웃음이 지어지고 나의 것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은 자기만의 생각과 관점이 없는 사람들이고,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의 생각과 아집이 너무 강해서 불편함을 주는 사람들이고, 마지막 세 번째 사람들은 배려심과 정서의 편안함을 갖고 자신의 식견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는 마지막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쉬고 싶을 때 듣고 싶고 찾게 되는 오랜 음악처럼 편안함과 안정감 있고 사람을 있는 바라봐줄 수 있는 내면이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가 차가고 살아온 세월이 쌓여 갈수록 나는 나만의 감성과 정서를 다듬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주관을 갖고 생각하고 판다는 하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 주관이 타인을 불편하고 낡고 고인 생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 수록 수용력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없겠지만 나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
그렇다면, 자기만의 색깔과 정서를 가지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아마도 자기에게 집중하는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입으로 하는 말은 결국 생각의 혼돈을 일으키고 정서의 불안을 불러온다. 음악을 듣거나 독서를 하거나 지금 나와 같이 자기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거나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들 말이다. 때론 이런 시간이 지겹게 느껴지지만 인생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그만큼 중요하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자기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