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말 이전의 바다

by 김관우

<말 이전의 바다>


삑,

목소리보다 먼저 들려오는

작은 울림이 있다.

모래 속에서,

파묻힌 시간의 주머니가 터진다.


아이의 발은

아직 문장을 모른다.

그러나 눌러쓴 한 음절로

세상의 첫 발화를 시작한다.


삑, 삑,

소리는 자음도 모음도 없이

모래의 속살을 벗긴다.

어떤 말도 남기지 않고-

기억보다 더 얇은 입김이

허공 위에 매달린다.


바다는

놀라는 척 밀려오고

되물음 없이 물러가며

하얀 웃음선 하나를 두고 간다.


지금,

세계는 가장 가벼운 발자국에 눌려

파도의 이마가 열리고

그 위로 새벽의 빛이

하나 둘 조각난다.


삑-

그 소리는

말을 품기 직전의 세계다.

누구도 이름 붙이지 않은

파편들이 떠오른다.


아이의 신발 틈으로

저녁의 잔해들이 스민다.

바람도 아니고

고요도 아닌,

깨진 시간의 조각이

발끝을 감는다.


그때,

어디선가

삑-

다시,

언어 이전의 세계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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