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불씨를 파는 남자

by 김관우

<불씨를 파는 남자>


남자를 처음 본 건, 오래된 시장 골목의 끝, 무너진 간판과 먼지에 잠긴 창들이 겹겹이 누워 있던 그곳이었다.

오후의 빛은 가라앉고 있었고, 골목으로 흘러든 바람은 무엇도 부러뜨리지 못한 채 텅 비어 흔들렸다.

나는 그 길을 걸었고 이유는 없었다. 기억도 남지 않는다. 다만, 낡은 문 하나가 반쯤 열려 있었다.


문 너머로 희미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나무가 젖은 듯한 뿌연 기운이 코끝을 스쳤다.

문 앞에는 손으로 쓴 작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불씨 팝니다.

기억 한 조각 또는 마음 하나와 교환합니다.]


나는 문을 밀었다. 그곳은 기척도 들지 않는 정적의 틈이었다. 공간은 좁았고 사물은 모두 벽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낡은 탁자 하나, 그리고 그 곁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얼굴. 살갗은 바래 있었고 눈동자는 안개처럼 흐릿했다. 그는 나를 보았다. 인사도 질문도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던 무언가였다.


”불씨를 판다고 하셨죠?“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은 사라질 듯 얕았고 목소리는 오래된 물의 울림 같았다.


”예.“


그는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서 작은 불빛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불이라기보다는 생명체였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내 손끝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이게 뭡니까?“


”남겨진 것들입니다. 시간이 지우지 못한 조각들, 감정의 마지막 숨결. 그걸 잠시나마 다시 품을 수 있지요.“


”그걸 사면 저는 뭘 얻게 되나요?“


그는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 조용히 대답했다.


”그건 불씨가 다 타고 난 뒤에 알게 됩니다. 대신, 당신의 마음 하나를 두고 가셔야 합니다.“


”마음이라면······?“


”가장 오래 지닌 것 또는 가장 버리고 싶은 것.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오래도록 가라앉아 있던 감정 하나가 떠올랐다. 후회였다. 그녀를 외면했던 마지막 순간, 하고 싶었던 말들을 삼켰던 날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시간.


”후회를 두고 가겠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이 내 가슴에 닿자 순간적으로 안쪽에서 밀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낯선 빈자리가 생겼다.

그는 불씨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것은 작고 생각보다 무거웠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 덮인 들판 위를 걷는 아이가 떠올랐다. 발자국은 이어졌고 그 위로 희뿌연 기운이 내려앉았다. 아이는 멈추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고 그저 눈 속으로 걸어갔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상자를 닫고 있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나는 조용히 가게를 나섰다. 골목은 전보다 더 낡아 보였고 공기는 더 묵직했다. 손 안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후회는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 그 골목을 찾지 못했다. 길은 더 이상 그곳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가게는 아예 사라져 있었다. 나는 그저 불씨를 품은 채 살아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씨는 가끔 스스로 빛났다. 잊었다고 믿었던 기억들이 다시 피어오를 때 그것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그것이 나를 태우는 불이 아니라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후회가 사라진 자리에 자라고 있던 것들. 두려움, 낯섦, 익숙하지 않은 슬픔. 그 모든 감정이 새롭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불씨는 천천히 타올랐다.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불이었다. 나는 그 불이 다 타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알지 못했다. 다만,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게 불씨 하나로 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이름으로, 다른 온기로 떠돌 뿐이다.

ㅡㅡㅡㅡ

-단편(엽편)소설-

작가의 이전글[시]오카리나를 불던 사람